급격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산업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 연장근로제가 한 주 단위로 제한되면서 업무 효율성은 물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주52시간제 유연화’ 등의 근로제도 개편이 한시바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청 주문이 많은 자동차 부품업계가 대표적이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부품업계는 일반적으로 완성차업체의 주문에 따라 사업장을 가동해 근무시간이 불규칙하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값 폭등과 반도체 공급난 등 공급망 붕괴로 주문 주기나 수량이 더욱 불규칙해졌지만, 엄격한 노동 규제에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주문이 들어와 공장을 가동하는 주에는 80시간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나 주문이 없을 때는 52시간을 채우기도 버겁다.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주문이 몰려 사람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52시간제 제한에 따라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면 납품을 못한다”며 “납품을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주문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공급난이 해소되면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 규제에 답답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일감과 함께 소득이 줄어든 제조업계 종사자들은 월급을 늘릴 뾰족한 수가 없다. 올해 고용시장에도 한파가 불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연장근무가 가능할 때 최대한 추가 수익을 벌어야하지만 길이 막혔다. 업계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연장근무 등을 통한 추가 수익을 원해도 주52시간제 때문에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연구개발 역시 노동규제로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현행 특별연장근로인가 제도는 소재·부품·장비 등을 중심으로 인정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앞다퉈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 특별연장근로인가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노동시간에 따라 일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직종임에도 노동시간 배분과 휴게·휴일 등을 제한하는 규제가 여전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의 자율성과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노동시간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연장근로 제한이 전무하다. 관리직·운영직·전문직·컴퓨터관련직·외근영업직 등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주급(약 85만원 이상)을 받을 경우 초과근로수당 및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시행 중이다. 영국은 17주 평균 기준 1주 48시간 내에 연장근로가 가능하지만 노동자와 합의할 경우 예외를 허용한다.
일본은 월 45시간 1년 360시간 내 연장근로가 가능한데, 특별한 경우에 월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이를 늘릴 수 있다. 일본 역시 전문성을 갖춘 고연봉자를 대상으로 연장근로 규제를 완화했다. 금융상품 개발·취급, 애널리스트·컨설턴트, 신기술·상품 연구 개발 등 업무 종사자의 연봉이 약 1억원을 초과하면 연간 104일 이상 휴일을 부여하는 조건 아래 노동시간 한도 및 시간외수당 적용을 제외한다. 연구개발 부문은 연장근로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에 국내 노동 규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약 26.4%는 주 52시간 제도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외국투자기업의 48.6%도 노동 분야의 개선 과제로 주52시간제 같은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가장 높게 선택했다.
산업환경 변화에 맞춰 다양하고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근로시간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처럼 연구개발직이나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는 초과근무를 허용하고, 현재 주단위인 연장근로 산정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면서 관련 입법 예고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연장근로시간 기준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현행 제도는 기본 주당 40시간에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기간을 주 단위로 인정한다. 정부는 그 기준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등으로 확대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경총 관계자는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도 활용 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고 전체·부분근로자대표도 서면 합의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재량 근로시간제 역시 대상 업무를 법이 아닌 노사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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