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서류가 아닌 온라인을 통해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또 해를 넘겼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보험업계도 팔 걷고 관련 제도 도입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의료계의 움직임이 미온적이다. 그러는 사이 매년 최소 4억장의 종이가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소비되고 있다. 가입자 편의 뿐만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실손보험청구 전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손보험 청구에 종이만 최소 4억장…”환경 위해서도 좋지 않아”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약 1억건 이상의 실손의료보험 청구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손보험을 청구하면 △실손청구서류 △진료비 영수증 등 최소한 4장 이상의 종이가 이용된다.
산술적으로 연간 4억장 넘는 종이가 실손청구에 쓰인다는 의미다. 4억장의 종이 발행을 위해서는 연간 4만 그루의 나무가 소비되고, 115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 4만 그루를 심으려면 약 30만평(약 1㎢)의 대지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2019년 1억531만건, 2020년 1억626만건, 아직 집계가 공개 되진 않았지만 2021년에도 1억건이 넘는 실손보험 청구가 이뤄진 것으로 봤을 때 3년 동안 여의도 면적(2.9㎢)에 해당하는 산림이 실손보험 청구만으로 사라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우편발송을 할 경우 이용되는 봉투나 운송수단, 서류 창고 보관, 보험금 접수를 위한 교통수단 이용 등까지 감안하면 환경 저해요소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에 쓰이는 병원 영수증과 세부내역서 등은 일반 점포 발행 영수증보다 크고 두꺼워서 온실가스와 쓰레기 배출면에서 더 좋지 않다”며 “전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과도 지금의 실손보험 청구 제도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신경쓰는 입법과제임에도 해넘겨…법 개정 논의는 ‘함흥차사’
우리나라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진료비를 의료기관과 직접 정산한 이후 실손보험금을 보험회사에 청구하도록 하는 상환제다. 특히 종이문서 제출 중심이어서 가입자 청구 부담이 크고 최근엔 환경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에 현재 실손보험청구 전산화 시행을 골자로 하는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 6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청구 전산화 권고를 하면서 공론화 됐지만 의료계의 반대가 지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실손보험청구 전산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입법과제로도 보고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여전히 법 개정 논의는 함흥차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 관련 세미나를 열고 금융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사협회, 병원협회, 의협추천 소비자단체, 금융위 추천 소비자단체,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이 참여 실손보험청구 전산화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내용의 ‘8자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언제 첫 회의가 열릴지도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국민 생활은 물론이고 의료계 업무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도 변경이어서 최대한 협의안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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