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달러 52만원에 팝니다” “1유로 1300원에 드립니다”
내년 봄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려던 A씨는 최근 한풀 꺾인 원/달러 환율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환율이 고공행진을 할 때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한데다, 현지 물가까지 코로나19(COVID-19) 유행 이전보다 크게 올라서다. 이에 최근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틈틈이 달러를 사모으고 있다. A씨는 “내년에 다시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니 현지에서 쓸 돈이라도 환율이 내렸을 때 미리 사두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외환시장은 ‘킹달러(달러 초강세)’의 해였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긴축 기조 앞에 원화를 비롯한 여타 통화들 모두 약세를 면치 못했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시절에나 봤던 1400원을 넘어섰다. 이후 연준의 긴축 기조가 선회할 조짐을 보이자 한 달만에 100원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이렇게 환율이 요동치자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간 외화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진풍경도 나오고 있다.
29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보다 2.5원 내린 1264.5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당근마켓과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검색하면, 달러를 사고 판다는 글이 수십건씩 뜬다. 이렇게 달러 개인 거래가 늘어난 것은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의 변동폭(종가 기준)은 현재까지 252.6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14일 1187.3원에서 9월 28일 1439.9원까지 오르면서다. 최근 5년(2017~2021년)동안 기록했던 환율의 평균 등락폭(131.6원) 대비 무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만큼 올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컸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전일대비 변동률은 0.90%로 전월(0.54%)에 비해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월 1.12% 이후 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1월 중 원/달러 환율의 전일대비 변동폭은 12.3원으로 한 달 전 7.7원보다 높아졌다. 2020년 3월 13.8원 이후 최고치다.
올해 초 원/달러 환율은 1190원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본격화된 지난 2월 24일 1200원대에 재진입한 후 10개월이 지난 이날까지 이 선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미 연준이 긴축 기조를 본격화하자 환율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연준은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사상 유례가 없는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그 결과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우리나라(3.25%)보다 1.25%포인트 높은 4.5%다.
이에 안전자산인 달러화로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22일 13년6개월 만에 1400원선을 돌파했다. 종가 기준 1400원선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3월20일(종가 1412.5원) 이후 처음이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화지수(DXY)는 올해 초 95대에서 환율이 1400원 선을 돌파했던 지난 9월 114선을 뛰어 넘었다. 이는 닷컴버블 사태 당시인 2002년 5월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치다.
이후 환율은 지난 11월7일(종가 1401.2원)까지 약 한달반 동안 1400원대에 머물다 지난달 8일 1300원대 후반으로 내려왔다. 이달 들어선 지난 20일 1289.6원으로 마감한 뒤, 8거래일 연속 12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다수의 기관들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올해처럼 1400원을 넘으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산업연구원 1320원 △한국금융연구원 1360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1370원 등을 전망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예상보다 낮게 관측되는 등 물가가 정점에 달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어 이에 따라 연준의 긴축 기조도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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