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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집 앞에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변경을 요구하던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법원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행진경로만 소폭 변경해 시위를 강행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법률(집시법)의 모호한 규정을 악용해 불특정 다수가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는 주택가 ‘민폐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 후 소유주들에게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시위 출발지점은 동일하지만, 현수막 문구만 일부 변경한 채 행진경로를 정 회장 자택 100m 밖에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지난 11일 ‘GTX 집회 관련 알림’이라는 제목으로 소유주들에게 “현수막·집회금지 가처분이 일부 인용돼 집회 행진경로가 일부 변경됨을 알려드린다”며 “(정 회장)자택 100m 밖에서 집회, 현수막 문구는 일부 변경된다”고 고지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시위 방침은 사실상 결정됐지만 구체적인 시위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경기 양주와 수원을 연결하는 GTX-C 노선 중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 지하를 약 50m 관통하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정 회장 자택 앞에서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현수막과 팻말을 든 채 ‘은마 관통, 결사 반대’를 외치는 시위를 이어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GTX-C 노선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컨소시엄의 대표자다.
하지만 시위로 인해 주택가 인근 시민들은 소음으로 사생활 침해를 호소했다. 추진위 측이 시위 과정에서 마이크와 확성기를 통해 고함을 내면서 평일과 주말 구분없이 소음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부장 전보성)는 지난 9일 정 회장과 현대건설, 용산구 한남동 주민 대표 등이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위금지 및 현수막 설치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재건축 추진위가 정 회장 자택 100m 이내에서 마이크와 확성기 등 음향 증폭장치를 이용해 연설·구호·제창·음원 재생 등 방법으로 정 회장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적 발언이나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평온이 고도로 보장될 필요가 있는 개인의 주거지 부근에서 집회 또는 시위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행사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며 “정 회장의 인격권 등을 침해하고, 인근 일반 시민들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평온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재판부 결정에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시위를 철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행진경로와 명예훼손성 현수막만 바꾼 채 시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일부 모호한 표현에 따른 제도적 공백이 존재해 실제적인 단속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 집시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위법한 시위로부터는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시위의 권리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헌법상의 동등한 권리인 행복추구권과 사생활 보장 등 타인의 기본권이나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는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속적 소음, 반복적 모욕, 악의적 표현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다수 일반 시민의 사생활 평온권, 건강권, 학습권, 인격권 등에 대한 보호 장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은 21건에 달하며, 그중 절반은 소음, 모욕, 표현방식 등이 도를 넘는 집회 및 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하는 의견을 담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제안 설명과 전문위원 검토 및 보고까지 마친 개정안도 17건에 이르지만, 여야가 처리에 속도를 내지 못하며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시위로 인해 주변 주민들의 행복추구권과·사생활 보장이 안될 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현행 집시법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시위 주체가 행동에 대해 건전한 인식을 갖고 권리 주장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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