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많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엔지니어이거든요. ‘네가 해보고 싶은 걸 해봐라’라고 장려하는 것이 3M의 문화입니다.
한국3M 신소재사업부에서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링 스페셜리스트로 10년째 근무 중인 윤인섭(39) 수석은 지난 6일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3M’ 하면 포스트잇이나 스카치테이프 등 문구류가 생각난다. 하지만 3M은 광학필름부터 전자·전기, 자동차, 건설, 전력, 통신 사업에 들어가는 소재를 만드는 ‘화학 기업’이다. 한국3M은 전남 나주, 경기 화성 2곳에 제조시설이 있다. 부산, 경기 평택 2곳에는 물류센터, 경기 동탄에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윤 수석은 한국3M에서 ‘글라스버블’ 제품을 전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글라스버블의 적용 분야를 발굴한다. 글라스버블이란, 3M에서 생산하는 단열재의 한 종류다. 속이 비어 있는 얇은 벽으로 이루어진 유리 재질의 구(球)형 입자인데, 평균 입자는 65마이크로미터(µm) 정도로 머리카락보다 얇다. 가볍고 단열 성능이 좋은 것이 장점이다. 윤 수석은 이날 글라스버블과 탄소 칼슘을 각각 병에 담아 흔들어 보였다. 탄소 칼슘은 백사장 모래 같았지만, 글라스버블은 물처럼 찰랑거릴 정도로 입자가 고왔다.
글라스버블은 골프공, 페인트,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우주, 조선까지 다양한 영역에 쓰인다. 예컨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실러 충전재를 글라스버블로 대체하고 있다. 완성차에는 보통 8kg 분량의 PVC(폴리염화비닐) 소재의 실러를 바른다. 하지만 PVC 소재 대신 글라스버블을 섞으면 무게를 8kg에서 5kg 정도로 줄일 수 있다. 완성차 무게가 줄어들면 연비가 개선된다.
3M은 글라스버블 외에도 약 5만5000가지 제품을 만든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맡은 제품과 다른 제품 간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한다. 3M은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15% 룰’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구축했다. 15% 룰이란, 업무시간의 15%를 신제품 연구개발에 할애하는 3M의 제도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15% 룰’은 회사의 히트 상품인 ‘포스트잇’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윤 수석은 “업무시간을 이용해 창의력을 높이는 것을 회사 차원에서 존중하겠다는 의미”라며 “15는 3M에서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엔지니어들은 생각보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며 “붙여놓으면 서로 얘기하려고 경쟁해 힘들 정도”라고 웃었다.
경북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윤 수석은 “글라스버블을 가지고 더 많은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직업적 소망”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위해 3M의 다른 엔지니어들과 기술에 대해 더 많이 소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3M 직원은 6만3000명이며, 한국3M 직원은 1600명 수준이다. 그 가운데 엔지니어는 150명이다. 아래는 윤 수석과 일문일답.
-근무 일과를 설명해달라.
“그때그때 다르다. 평소에는 동탄에 있는 기술연구소로 출근하지만, 자료를 만들 때는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다만 개발 업무를 할 때는 매일 연구소로 출근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고객사 생산기지가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탓에 출장도 잦다. 주 2~3회 정도는 창원이나 부산 등으로 출장을 간다. 가끔 해외 출장도 간다. 동료인 영업팀 직원들에게 글라스버블에 대해 교육하고 소재의 특징을 숙지시키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신소재사업부는 어떤 부서인가
“첨단소재사업부라고도 불린다. 3M 하면 보통 수세미나 포스트잇, 테이프 등의 제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신소재사업부는 원자재를 개발하고 판매한다. 어떻게 보면 B2B(기업 대 기업) 성격이 강한 제품을 다루고 있다. 원료를 다른 업체에 판매하고, 업체에서는 우리의 원료를 가지고 또 다른 반제품을 만들거나 완제품을 만들게 된다.”
-10년간의 회사 생활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엔지니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기술력이 접목(Apply)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이를 해외 사업에도 반영된다. 이를 ‘리플리케이션(replication)’이라고 부른다. 3~4년 전쯤 가전제품의 전기효율을 높일 방법을 개발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고객과의 대화가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제품의 쓰임새를 잘 모르는 고객들이 많다. 또 고객별로 요구사항이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글라스버블을 기존 소재와 어느 정도 비율과 섞어야 하냐고 문의가 온다. 무조건 가볍고, 단열이 잘 된다고 좋은 제품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고객에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 하나부터 원자재 단가까지 상담한다. 어떻게 보면 고객사의 기밀 정보를 캐물어 보는 것과 같아서, 기밀 유지 계약서를 쓰고 진행하기도 한다.”
-‘15% 룰’ 외에 3M만의 특별한 문화가 있나.
“지부별로 ‘테크 포럼’을 연다. 나라별로 3M 엔지니어들이 모여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50년 된 제도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3M의 경우 제품이 5만5000가지다. 그러다 보니 엔지니어들이 자신이 맡은 기술과 제품에만 매몰되고, 회사에서 어떤 기술력을 보유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테크 포럼을 통해 서로의 제품을 공유하고 배운다. 테크 포럼에서는 일종의 동아리 같은 ‘챕터’를 만들기도 한다. 국가별로 테크 포럼을 총괄하는 ‘체어(의장)’이 있는데, 최근 한국 체어로 임명돼서 2년간 한국지부를 이끌게 됐다.”
-도전 정신을 강조하는 회사인 것 같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기조가 강하다. 포스트잇도 초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실패해서 세상에 나온 제품이다. 특히 한국3M 기술연구소에는 ‘펭귄 어워드’가 있다. 그해에 가장 망한 프로젝트를 선정해 수상하는 제도다. 정확한 상금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수상 프로그램 가운데 높은 축에 속한다. 펭귄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절벽에서 떨어져야 하는데, 겁이 많아 뛰어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마리가 도전하면 다 같이 뛰어든다. 실패를 숨기지 말고 거기서 배운 교훈을 동료들에게 공유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개척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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