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령으로 나라 안팎이 소란스럽다. 45년만의 계엄령으로 인해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가 다시 주목 받는다. 다만 게임 분야에서는 계엄령과 관련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과거 아픈 역사를 겪고 이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회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 게임에서는 계엄이 흔한 소재다. 해외 게임이 계엄을 어떤 식으로 녹였왔는지 살펴봤다.
유저가 직접 독재자가 될 수 있는 ‘트로피코 6’
독일 림빅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트로피코 6’는 플레이어가 가상의 섬나라 지도자가 돼 트로피코 국가를 운영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트로피코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거나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유저 자유도가 높은 정치 시뮬레이션인 만큼 ‘계엄령’ 옵션도 있다. 계엄령이 발동되면 진행 중인 선거를 비롯해 모든 행정 일정이 취소된다. 선거에서 계속 승리해 연임을 이어가는 것이 게임의 목적인 만큼 계엄령이 게임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거세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민심이 하락해 경제 타격과 시민 저항이 불가피하다. 운영 과정에서 군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반란군이 급증하고 유저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군사적 갈등을 다룬 FPS 게임 ‘배틀필드 4’
‘배틀필드 4’는 현대 전쟁을 배경으로 한 1인칭 슈팅게임이다. 게임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가상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군사 작전을 다룬다. 중화사상을 추종하는 창 제독이 러시아의 지원을 약속 받고 중국 정부에 쿠데타를 벌인다는 이야기다. 게임 속에서 그는 미국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상하이시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플레이어는 이들 반란군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사실적인 그래픽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계엄 상황의 혼란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특히 민감한 주제임에도 실제 도시와 분쟁 지역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오히려 현실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대만 계엄령 당시가 배경 ‘반교’
앞선 사례는 가상의 상황 속에서 유저가 직접 계엄령 사태에 개입하는 내용의 게임이지만 실제 역시를 바탕으로 한 게임도 있다.
대만의 레드캔들게임즈가 개발한 ‘반교’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지속된 대만 계엄령 시기를 다룬 호러 게임이다. 당시 시기는 대만 국민당의 통치 하에 있었던 ‘백색 테러 시기’라고 불린다.
게임은 1960년대 대만 취화고급중학교에서 주인공이 탈출한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작중에서 표현되는 여러 퍼즐들과 미션들은 당시 국민당에 의한 민간인 무력 진압을 암시한다. 주인공 팡레이신이 들고 있는 액자는 유리가 총을 맞아 깨져있고 열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인형 연극 퍼즐은 권총을 든 헌병을 묘사한다. 또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존재들에 의한 초자연적 현상도 자주 등장한다.
반교는 2017년 출시 직후 스팀 게이머 리뷰 중 긍정 리뷰 97%를 기록했으며 대만 지역 스팀 인디 게임 부문 판매량 1위, 같은 시기 글로벌 판매량 3위에 올라섰다. 특히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게임 진행 과정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개입을 최소화해 몰입을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교의 흥행은 대만의 역사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한 스팀 게임 이용자는 해당 게임 리뷰에서 “미국인인 나에게 대만의 민속과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김홍찬 기자 hongch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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