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추가로 발표했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통제의 핵심인 화웨이 반도체 생산기지 일부가 제재 명단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규제 명단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구형 버전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중국 기업이 계속 사용할 수 있으며 화웨이와 관련된 모든 반도체 제조 시설이 수출 규제 명단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며 “중국에서 가장 유력한 HBM 생산업체 중 하나인 CXMT에 대한 장비 판매는 계속 허용하면서 중국으로의 HBM 및 AI 반도체 판매를 차단하는 것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은 대중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 수출 관련 제재 대상과 품목이 확대된 새로운 규제를 발표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와 화웨이의 공급망에 해당하는 기업들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및 HBM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수출 제한 대상으로 중국 기업 140여개가 추가됐다. 반도체 기업 20여곳과 반도체 장비 업체 100여곳 등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중 하나로 꼽히는 나우라 테크놀로지 그룹도 수출 제한 목록에 포함됐다.
그동안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억제해 온 미국은 이번에 한층 더 강화된 규제안을 발표했지만, 일각에서는 새로운 수출 통제안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레고리 앨런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AI 센터장은 “최신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육성을 방해할 수 있지만, 화웨이와 중국 기업이 악용할 수 있는 허점도 남겼다”고 했다.
화웨이의 경우 반도체 생산기지 일부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화웨이의 생산기지 중 목록에 없는 제조 공장이 몇 개나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번 규제는 첨단 칩 생산에 대한 통제에 집중돼 있다’고만 답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가 자체적으로 짓고 있는 반도체 생산기지가 아닌, 화웨이의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AI 가속기 시리즈를 제조하고 있는 SMIC를 규제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등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생산에 뛰어든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선전시로부터 약 300억달러(약 40조2000억원)를 지원받고 있다. SIA는 화웨이가 기존 반도체 공장 최소 2곳 이상을 인수한 데 이어 3개 이상의 신규 생산기지를 짓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CXMT에 대한 장비 수출 규제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의문을 남겼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CXMT는 오는 2026년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D램 출하량 기준 업계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CXMT는 HBM 제품의 구형 모델(HBM2)을 이미 양산하고 있고, 규제 대상에 오른 선단 제품 개발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최신 HBM 수출은 금지된 반면 중국 내에서 차세대 HBM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다소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김형준 서울대 명예교수(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는 “CXMT 등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기업들의 경우 미국 장비 기업들이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며 “중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CXMT마저 수출 금지 대상에 오르면 매출 타격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미국이 규제를 강화해도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어 화웨이와 CXMT 등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의 굴기를 완전히 제동하는 것은 역부족이다”며 “특히, 이번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CXMT는 강력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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