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이를 넘어 시장을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 시장의 변화가 우리의 예상보다 크고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 이 때가 신생 기업들에는 기회지만 기존의 강자들에겐 위기가 된다. 특히 기술 트렌드의 전환이 크고 빠른 정보통신(IT)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작이자 상징은 ‘소프트웨어’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꼭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를 의미하지는 않게 됐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시대를 지나면서 기업의 성격을 크게 바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와 ‘오피스’보다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가 더 중요한 글로벌 초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가 됐다. 지금까지의 변화는 새로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높은 경쟁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반이기도 하다.
IT 업계는 AI 시대의 다음 단계로 ‘에이전트(Agent) AI’를 이야기한다. AI 모델이 우리의 일상과 업무 환경에서 함께 일하고 서로의 역할을 가진 사람과 AI 모델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러한 시대에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는 물론 PC와 개인용 플랫폼의 두 여정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연례 행사 ‘이그나이트(Ignite) 2024’에서는 이 두 가지 방향 모두에서 확실한 목표를 선보였다.
클라우드에서부터 시작하는 ‘AI 에이전트’ 시대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처음 마주할 고민은 ‘어떤 것을’ ‘어디에’ ‘어떻게’ 도입할지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고민의 퍼즐은 제법 맞추기 까다롭다. 제대로 사용자에 전달하기 위한 기존의 기술, 비즈니스와의 ‘연결’까지 고려하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부분에서 ‘애저’ 인프라와 ‘마이크로소프트 365’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에게 기술을 전달하는 데 있어 높은 경쟁 우위를 갖춘 모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마이크로소프트 365’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이미 충분히 사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AI를 위해 뭔가 데이터를 가공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잘 통합된 하나의 플랫폼에서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이런 점들이 실제 ‘마이크로소프트 365’ 고객들이 AI 도입에서 ‘코파일럿’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러한 견고한 플랫폼 기반에서 조직만의 AI 기능을 정의할 수 있는 ‘코파일럿 스튜디오’에는 사용자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는 기능들이 추가됐다. 공개 프리뷰로 제공되는 ‘코파일럿 스튜디오 자율 에이전트(Copilot Studio Autonomous Agents)’는 특정 이벤트 발생 시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자동 에이전트를 직접 구축할 수 있게 돕는다. ‘에이전트 라이브러리’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템플릿을 제공해 에이전트 구축 과정의 부담을 크게 줄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좀 더 본격적인 ‘커스텀 구축’에 대해서는 ‘에이전트 SDK’와 ‘애저 AI 파운드리 통합’ 발표를 주목할 만 하다. ‘에이전트 SDK’는 마이크로소프트 365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에이전트를 설계 및 배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특히 코파일럿 스튜디오와 코드 기반 에이전트를 연결해 로우 코드부터 프로 코드 솔루션까지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할 수 있다. ‘애저 AI 파운드리 통합’은 코파일럿 스튜디오를 통해 만든 에이전트를 ‘애저 AI 카탈로그’로 가져가 사용 목적에 맞게 세부 조정할 수 있게 해 활용 범위를 넓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및 코파일럿 기술을 활용한 AI 솔루션 개발을 지원하는 코파일럿+ AI 스택의 활용성도 확장됐다. 통합 플랫폼 ‘애저 AI 파운드리(Azure AI Foundry)’에서는 기존 애저 AI 서비스 및 도구 접근성을 높이고 사용자들이 AI 앱과 에이전트를 쉽게 설계하고 맞춤화, 관리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능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채널에서 AI 에이전트를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애저 AI 파운드리 SDK’나 다양한 모델과 도구를 쉽게 찾고 활용할 수 있는 ‘애저 AI 파운드리 포탈(Azure AI Foundry Portal)’ 등이 포함됐다.
애저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모델의 ‘커스터마이즈’ 지원도 확장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W&B(Weights&Biases), 스케일 AI(Scale AI), 그레텔(Gretel) 등과의 협력으로 애저의 AI 모델 커스터마이즈 역량을 크게 높였다. 이를 통해 애저에서 제공되는 오픈AI의 GPT4 시리즈 모델과 훈련을 위한 데이터 확보 과정, AI 앱의 운영 등에서 최적화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애저에서 제공되는 모델 또한 더 늘었다. 특히 ‘NTT 데이터’나 ‘브리아 AI’의 모델들은 일반적인 범용이 아닌 특정 산업군 최적화형 모델로 접근했을 때 큰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화형 모델의 등장은 향후 AI 시대 기술 활용에서 부담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데 있어 중요한 방향성으로도 꼽힌다. 애저 오픈AI 서비스에서의 새로운 조정(fine-tuning) 옵션 또한 앞으로의 AI 시대 성공을 위한 효율성 확보에 보탬이 될 것이다.
애저의 인프라 제공 옵션도 늘었다. 새로운 ‘애저 로컬(Azure Local)’은 사용자가 원하는 위치에 인프라를 배치해 애저 서비스 형태로 사용할 수 있는 제공 모델로, 특정 규제 준수 등의 목적으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비슷한 옵션들과 비교하면 하드웨어 제조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하드웨어 선택권 정도가 눈에 띈다. 기존의 ‘애저 스택 HCI’ 서비스 사용자들은 이 ‘애저 로컬’로 자동 업그레이드된다.
AI 기술 활용을 위한 인프라를 가장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버리스(Serverless) GPU’ 옵션도 발표됐다. 애저 컨테이너 앱의 ‘서버리스 GPU’는 AI 코드를 별도의 인스턴스 할당 없이 필요에 따라 자동 조절하면서 돌릴 수 있는 완전 관리형 옵션이다. 이 또한 비슷한 옵션을 AWS 등에서도 제공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를 위한 인프라 옵션 측면에서도 신기술을 가장 빨리 도입하는 서비스 제공자 중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이그나이트 2024’서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인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 GB200’ 기반 서비스 인스턴스인 ‘애저 ND GB200 V6’를 선택된 파트너를 위한 제한된 프라이빗 프리뷰 형태로 제공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으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엔비디아의 ‘GB200 NVL72’ 기반인 것으로 보인다.
‘HBv5 가상머신’ 인스턴스 구성도 흥미롭다. 이 인스턴스는 AMD의 ‘젠 4’ 아키텍처 기반 코어와 HBM(High Bandwidth Memory)을 조합한 구성으로 특별 주문된 ‘에픽 9V64H’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프로세서와 HBM이 결합된 서버용 프로세서로는 인텔의 ‘제온 CPU 맥스 시리즈’가 있었는데 특별 제작이지만 AMD의 제품도 등장한 데서 눈길을 끈다. 여타 AMD 에픽 플랫폼보다 두 배 가량 확장된 프로세서 연결 성능과 인피니밴드 네트워킹의 결합으로 고성능 컴퓨팅(HPC) 등에서의 성능을 극대화했다.
자체 실리콘 단에서도 여러 가지 시도가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설계한 중앙처리장치(CPU)와 AI 가속기를 가지고 있고, 이번 ‘이그나이트 2024’에서는 ‘애저 부스트 DPU(Data Processing Unit)’을 선보였다. 이 DPU는 흔히 ‘스마트NIC’, ‘IPU’ 등으로도 불린다. 이는 가상화 환경에서 워크로드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 환경과 네트워크, 스토리지의 전송, 암호화를 처리해 서버의 다른 컴퓨팅 자원 활용 효율을 높인다. 이 DPU 또한 이미 AMD나 엔비디아, 인텔 등도 선보인 바 있다.
윈도와 오피스에서부터 시작하는 ‘AI 컴퓨팅’ 시대
PC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윈도’와 ‘오피스’를 통해 전해 오는 AI 시대로의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 ‘윈도’와 ‘오피스’는 예전이라면 핵심 전략 제품의 의미였지만 애저와 오피스의 구독 모델이 자리잡은 지금은 사용자와 기술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의 역할이 더 큰 모습이다. 오피스를 통해 제공되는 최신 AI 기능도 ‘마이크로소프트 365’ 구독 사용자들에 우선 제공된다.
‘마이크로소프트 365’의 주요 앱은 이제 더 많은 AI 기반 기술들이 들어가 사용자의 번거로운 반복 작업들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준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 액션’은 프롬프트로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해 미팅 요약이나 보고서 작성, 채팅 및 이메일 요약 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돕는다. ‘팀즈’에서는 AI가 공유 화면의 콘텐츠를 분석해 중요한 논의 사항을 기억하고 ‘파워포인트’에서는 문서의 핵심 내용을 슬라이드 디자인에 반영해 초안 디자인과 내용을 제안한다.
이런 애플리케이션 수준의 변화는 사용자들에게 좀 더 피부에 와닿는 ‘AI 시대’ 경험을 제공해줄 것으로도 기대된다. 엑셀에서는 파이썬(Python) 언어 지원이 본격화됐다. 코파일럿이 함께 지원되면 데이터를 적절히 분석하기 위한 코드를 코파일럿이 제시하고, 이를 엑셀에 직접 적용하는 활용도 가능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의 새로운 AI 에이전트는 개인 업무의 보조를 넘어 팀 업무의 보조까지 지원하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직원 셀프 서비스 에이전트’는 직원들의 휴가 신청, 급여 및 복지 정보 확인, 장비 요청 등 지원 업무를 돕는다. ‘프로젝트 매니저 에이전트’는 프로젝트 계획 수립부터 실행까지의 과정과 관리를 자동화한다. 이런 에이전트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사람이 직접 하기엔 시간 대비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작업을 지원해 조직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검토는 꼭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윈도에서는 ‘코파일럿+ PC’의 기능 확장이 본격화될 모습이다. 지난 5월 처음 발표된 ‘코파일럿+ PC’는 하드웨어적으로는 프로세서와 플랫폼에 40TOPS(초당 40조회 연산) 이상 성능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갖췄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NPU를 활용한 다양한 온디바이스형 소형 모델을 탑재해 활용하는 환경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출시 초기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리콜(Recall)’은 물론 실시간 번역이나 이미지 생성과 AI 기반 리터칭 등의 기능이 소개된 바 있다.
향후 윈도 플랫폼에서 제공, 활용하는 AI 기술의 폭도 넓어질 모양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의 검색 기능에 NPU를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활용하면 AI가 저장된 자료 속성을 미리 파악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게 지원한다. 이 검색 기능은 PC에 저장된 파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용 원드라이브까지 적용될 계획이다. 작업 과정은 모두 로컬 PC에서 이뤄진다.
‘코파일럿+ PC’에서 제공됐던 주요 기능의 기반 기술도 이제 서드파티 앱들이 쓸 수 있게 공개될 예정이다. ‘윈도 코파일럿 런타임’의 새로운 AI API는 서드파티 앱들이 ‘코파일럿+ PC’의 주요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여기에는 소형화된 ‘파이 3.5 실리카(Phi 3.5 Silica)’ 언어모델과 광학문자인식(OCR), 이미지 분류와 제거, 이미지 설명, 이미지 업스케일링 등의 기능이 포함된다.
이번 새로운 API의 등장을 통해 서드파티 앱들이 별도의 모델과 하드웨어 가속 지원 구현 등의 부담 없이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도 기대된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뛰어난 기능을 갖춘 윈도 독점형 앱들을 확보해 최신 ‘코파일럿+ PC’ 플랫폼의 매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25년에는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용자들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시장 전반의 ‘AI PC’ 기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클라우드 디바이스 ‘윈도 365 링크’는 서비스형 ‘윈도 365’를 이용하기 위한 전용 단말로 등장했다. 이 디바이스는 클라우드로 제공되는 ‘윈도 365’를 ‘보여주는’ 데 최적화된 최소한의 구성으로, 제품 자체의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가격은 보급형 PC 수준인 349달러(약 47만5000원)로 발표됐다. 사양 자체는 인텔의 보급형 프로세서와 8기가바이트(GB) 메모리, 64GB 스토리지 정도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의 ‘모던 워크’에 필요한 메인스트림 급 사양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디바이스는 단지 클라우드의 ‘윈도 365’와의 연결만을 수행하면 충분하기 때문에 사양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일단 바로 쓸 수 있다는 부분과 디바이스 수준에서는 관리 권한의 사용자도, 로컬 스토리지와 앱도 없다는 점 모두 ‘씬 클라이언트’의 전형을 보여 준다. ‘윈도 365’를 사용하는 기업 사용자라면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심을 줄 부분이 많지 않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OEM 파트너들과 함께 이러한 콘셉트의 디바이스 시장을 확장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보안 측면에서는 두 가지 발표가 눈에 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바이러스 백신 같은 외부 보안 프로그램이 커널 모드 대신 사용자 모드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시스템 충돌이나 오류 발생시 운영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업데이트 관련 대란 같은 사건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을 변화기도 하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보안 패치 적용으로 재부팅해야 했던 일반 사용자용 윈도의 재부팅 주기는 최대 ‘세 달에 한 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11 엔터프라이즈에 재부팅 없이 보안 패치를 적용할 수 있는 ‘핫패치’ 기능도 발표했다. 이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는 ‘분기당 한 번’만 재부팅하면서 모든 패치를 받을 수 있다. 이 ‘핫패치’는 윈도 서버 제품군에서 먼저 선보였다. 윈도11 24H2 기반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프리뷰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