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강국인 독일·일본·미국의 자동차 업계에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점유율을 늘려 가고 있는 와중에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까지 길어진 탓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위기를 맞이하자 부품사들도 인원을 감축하는 도미노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2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태국 사업을 일제히 축소하고 있다. 최근 교도통신은 닛산이 2025년 가을까지 태국 현지 공장에서 1000여 명을 해고하고 다른 사업장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스즈키가 내년에 태국 아유타야, 라용 공장을 각각 폐쇄하기로 한 데 이어 닛산까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태국의 경우 본래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90%에 달하는 ‘일본 텃밭’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차 공세 탓에 80%대 점유율로 떨어졌다. 7월 중국 비야디(BYD)와 광저우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자회사인 아이온이 나란히 태국 현지에 공장을 완공하며 공세를 강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럽에선 독일과 미국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은 지난달 독일 내 공장 세 곳을 폐쇄하고 수만 명의 인력 감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독일 최대 산업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측이 “우리는 12월 초부터 파업에 대비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 포드도 최근 유럽에 근무하는 전체 인력의 14%(4000여 명)를 감축하고, 독일 쾰른 공장과 자를루이 공장에선 감산 및 시설폐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독일, 일본,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세에 수익성이 악화되자 몸집 줄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 브랜드들은 9월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 8.5%를 차지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대 45.3%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해 점유율이 2∼3%포인트가량 줄었음에도 여전히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독일 자동차 업계의 위기에는 고질적인 ‘독일병’도 더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에 따르면 독일 노동자의 지난해 병가 일수는 평균 19.4일로 스위스(9.2일)와 비교해 두 배 이상이었다. 테슬라의 한 독일 공장 인사 담당자가 병가를 낸 직원의 집에 불시에 찾아가 꾀병인지 점검한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독일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며 전기차 캐즘까지 심화돼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완성차가 어려워지자 부품 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1위 자동차 부품사인 보쉬(5500명 감축)를 비롯해 독일의 셰플러(4700여 명 감축)와 ZF프리드리히스하펜(1만4000명 감축)은 각각 유럽 사업장 내 대규모 감축을 발표했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은 2026년까지 프랑스 공장 2곳, 2025년까지 독일 공장 2곳을 폐쇄하기로 한 상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경우 미국이나 인도, 동남아 등지에서 실적이 좋은 상황이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 회사의 1∼10월 유럽 판매량은 90만48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독일·일본 업체들은 최근 중국에서 판매량이 급감하고 유럽, 동남아 시장까지 중국에 빼앗기니 타격이 더 컸다”며 “현대차·기아는 유럽에서 신차 출시가 다소 부족했는데 시장을 빼앗기지 않도록 고삐를 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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