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反)PC(정치적 올바름) 기조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 게임업계가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미국 게임사들의 과도한 PC 요소와 다양성(DEI) 정책 반영이 게이머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으며, 본래의 창의성과 몰입감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일본 게임들은 자유로운 캐릭터 디자인과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 글로벌 게임 톱10 중 8개가 일본 게임
1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메타크리틱 점수(10월 기준) 상위 10위권 중 8개를 일본 게임들이 차지하면서 미국 게임들을 압도하고 있다. 나머지 두 게임은 한국 넥슨의 독립 브랜드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9위)’와 미국 게임사 모스마우스의 ‘UFO 50(7위)’이 차지했다.
메타크리틱은 게임을 비롯해 영화,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의 리뷰 점수를 모아 종합 평점을 제공하는 사이트다. 미디어와 소비자들이 콘텐츠의 품질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엘든링’ DLC(확장팩)는 94점으로 1위를 기록했으며, ‘아스트로 봇’ ‘메타포 리판타지오’ ‘파이널 판타지 리버스’ ‘철권8′ 등 일본 게임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게임들은 PC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몰입도 높은 스토리와 캐릭터로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더 게임 어워드 등 글로벌 게임 시상식에서는 일본 게임들이 강세를 보이며 연이어 GOTY(올해의 게임상)를 수상해 왔다. 프롬소프트웨어는 2019년과 2022년에 각각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와 ‘엘든링’으로 GOTY를 수상하며 일본 게임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해는 벨기에의 라리안 스튜디오가 개발한 ‘발더스 게이트 3’가 GOTY를 수상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 때 미국 자본력에 밀렸던 일본 게임사들이 최근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개발 완성도를 높이면서 전 세계 게이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시대적 흐름에 맞는 창의적 자유와 몰입감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만큼 국내 게임사들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블리자드, 과도한 PC주의 집착으로 팬들 외면받아
반면 PC 요소에 치중해 온 미국 게임사들은 본연의 매력을 잃고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국 게임업계의 변화와 소비자와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를 꼽을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등으로 세계 최고 게임사로 불린 블리자드는 지난 몇 년간 지나친 PC 요소 반영과 선택적 정책 적용으로 팬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한 사례로 블리자드 슈팅게임인 ‘오버워치’에서 일부 캐릭터의 성적 지향을 갑작스럽게 변경하거나, 기존 남성 캐릭터를 동성애자로 설정하는 등 과도한 PC주의를 적용하면서 게이머들의 반발을 낳았다.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의도적으로 낮춘 디자인이 적용되면서 미적 요소가 약화됐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또 최근 출시된 소니 산하 미국 개발사 파이어워크 스튜디오(Firewalk Studios)의 슈팅 게임 ‘콩코드’는 이러한 PC 요소가 부각된 사례로 꼽힌다. 약 3000억원의 제작비와 8년의 개발 기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게 디자인되고 스토리에 과도한 PC 설정이 반영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며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출시 후 15일 만에 서비스가 종료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소니는 파이어워크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 “당장 게임 시장 흐름 바뀌기 어려울 것”
이에 게임업계 일각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PC 기조가 미국 게임업계에 자성의 계기를 제공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는 첫 임기 중에도 DEI 정책 제한 행정명령을 내리며 PC와 관련된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이번 재임 기간 동안에도 강력한 반PC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미국 게임업계가 과도한 PC 요소와 사회적 이슈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원하는 게임 본연의 재미와 몰입감을 되찾을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게임 시장을 일본 게임사들이 주도하는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의 서브컬처가 이미 오랜 시간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과 유럽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왔다”며 “어린 시절부터 일본식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소비자들은 일본 게임의 매력적이고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감성적인 요소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PC 정책으로 게임 개발자들이 바로 바뀌거나 미국 게임업계의 사회적·문화적 흐름이 급격히 달라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경쟁력을 곧바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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