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름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 혹은 비행기의 의미를 담는 건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름에서 시작된 기대감 탓에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혹평을 받기 쉽다.
미국의 고급 브랜드 링컨은 모든 SUV 라인업에 배 혹은 비행기의 의미를 더한 이름을 붙였다. 플래그십 SUV 내비게이터는 ‘항해사’를, 에비에이터는 ‘비행 조종사’, 코세어는 ‘쾌속 해적선’을 뜻한다. 그리고 2019년 국내에 처음 선보인 노틸러스는 ‘선원(Nautae)’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과감한 명명법을 선택한 링컨의 2세대 ‘올 뉴 노틸러스’를 시승했다.
MKX에서 시작된 노틸러스, 링컨의 효자 모델로 등극
노틸러스의 뿌리는 2007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 중형 SUV MKX다. 링컨은 2000년대 초부터 기계나 자동차를 의미하는 마크(Mark) 뒤에 알파벳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지어왔다. MKX는 등장 초기 위기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혼다의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의 중형 SUV MDX와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큐라는 포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원만하게 합의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링컨은 MKX를 버리고 새로운 중형 SUV 노틸러스를 2018년 선보였다. 1세대 노틸러스는 2019년 국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처음으로 완전 변경을 거쳤고 지금의 올 뉴 노틸러스로 거듭났다. 다행히 올 뉴 노틸러스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판매대수가 총 1022대로 전년 동기 대비 249% 상승했다. 브랜드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그야말로 링컨을 먹여 살리는 효자 모델이 된 것이다.
차급을 뛰어넘는 크기
신형 노틸러스는 분명 중형 SUV 세그먼트에 속하지만 덩치는 한 체급 위 수준이다. 변화를 거치면서 덩치를 키운 덕분이다. 신형 노틸러스의 차체 길이와 높이, 너비는 4910x1950x1735밀리미터(㎜)다. 이전보다 85㎜ 길어지고 15㎜ 넓어졌다. 키도 35mm나 커졌다.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2900㎜로 이전 대비 52㎜ 늘었다.
비슷한 가격대의 중형 SUV와 비교하면 크기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경쟁 모델인 BMW X3의 크기는 길이, 높이, 너비가 4710x1890x1675㎜며 휠베이스는 2865㎜다. 또 메르세데스-벤츠 GLC의 크기는 길이, 높이, 너비가 4720x1890x1645㎜고 휠베이스는 2890㎜다.
커진 크기는 분명한 장점이다. 웅장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여유로운 실내 공간에서 이점을 얻는다. 성인 4명이 타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 트렁크 공간도 기존 997리터(ℓ)며 2열을 접으면 최대 1948ℓ로 늘어난다. 덕분에 큰 짐을 적재하기 편리하고 ‘차박’을 즐기는 것도 문제가 없다.
변화의 핵심은 실내 구성이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운전석 A필러부터 센터페시아를 지나 조수석까지 이어지는 48인치 파노라믹 스크린은 디지털 향기 기능을 통해 미스틱 포레스트, 오조닉 애저, 바이올렛 캐시미어 등 향을 즐길 수도 있다. 취향의 단계도 3단계로 조절된다.
다만 커다란 디스플레이의 구성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든다. 전방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센터 디스플레이가 약간 아래쪽에 위치해 주행 중 시선 이동의 범위가 큰 편이다.
24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퍼펙트 포지션 시트는 운전자와 승객이 원하는 위치와 각도를 세심하게 적용할 수 있으며 마사지 기능까지 더해져 장거리 주행에도 피로감이 쉽게 쌓이지 않는다.
화장법 고쳐 날카로운 인상 강조한 외모
신형 노틸러스는 완전 변경을 통해 인상이 180도 달라졌다. 이전 모델의 경우 젊은 감각보다는 중후한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신형 노틸러스는 젊은 이미지가 더해진 느낌이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전 모델 대비 크기가 커졌고 헤드램프는 긴 수평 주간주행등을 더해 붙여 눈매처럼 다듬었다. 날렵한 이미지가 강조된 느낌이다. 주간주행등은 그릴 안쪽으로 이어져 일체감을 높이는 동시에 차체를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링컨은 측면 디자인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굵은 캐릭터 라인을 더하는 것이 아닌 매끄러운 표면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이를테면 도어 손잡이다. 링컨은 도어 손잡이를 창문틀에 배치해 깔끔한 표면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 사이드미러 아래쪽에는 노틸러스 차명과 크롬 요소로 포인트를 줬다. 휠 크기는 21인치며 비행기 터빈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후면에서는 MKX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수평형 테일램프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MKX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평형 테일램프는 굵기가 점점 줄어들었고 신형 노틸러스에 이르러서는 얇은 띠 형태로 변했다.
6기통에서 4기통으로 감량한 심장
링컨은 기존 V6 2.7ℓ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과감히 버리고 직렬 4기통 2.0ℓ GDTi 가솔린 엔진을 선택했다. 고급스러운 브랜드가 부드러운 질감의 V6를 포기한 것은 대담한 선택이다. 특유의 4기통 엔진 질감이 고급스러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 노틸러스의 4기통 심장은 안락한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 특히 최고출력 252마력, 최대토크 38킬로그램미터(㎏·m)의 힘을 뽑아내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출력 발휘 시점이 지연되는 터보랙 현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속이 경쾌하다. 이전 V6 엔진 대비 출력이 81마력 줄었지만 출력에 대한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유의 엔진 진동도 차체를 파고들지도 않았다. 8단 자동변속기 역시 부드럽게 기어를 바꿔 물었다.
피스톤의 수를 6개에서 4개로 줄인 덕분에 높은 효율성도 누릴 수 있다. 신형 노틸러스의 연료 효율성은 복합 기준 ℓ당 9킬로미터다. 이전 노틸러스와 비교하면 0.3㎞/ℓ 높아졌다.
링컨이 SUV 라인업의 이름을 비행기와 배에서 따온 이유는 승차감에서 찾을 수 있다. 신형 노틸러스는 크고 작은 요철을 상당히 부드럽게 타고 넘는다. 충격 흡수 능력이 높은 탓에 엉덩이로 전해지는 충격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고속주행안정감 역시 높은 편이다.
비결은 어댑티브 서스펜션에 있다. 신형 노틸러스에 적용된 어댑티브 서스펜션은 12개의 센서를 통해 조향과 가속, 제동, 차체 움직임을 모니터링해 서스펜션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주행 중 느껴진 아쉬움은 브레이크 페달의 감각이다. 미국 브랜드 특유의 ‘무른’ 페달 감각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제동력 발휘로 인해 승차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약간의 불안감을 전달했다. 그렇다고 제동 성능이 부족한 건 아니다. 2065킬로그램(㎏)의 무게를 가졌음에도 속도를 줄이는 능력은 준수했다.
중형 SUV에 배에서 유래한 이름을 붙인 링컨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분명했다.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주행을 선호하는 취향이라면 노틸러스 합리적인 선택지다. 차급을 뛰어넘는 공간은 물론 48인치 디스플레이, 승차감 등은 구매 가치를 높여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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