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레거시(구형) 공정을 중심으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도 이를 의식해 올 연말을 앞두고 조직개편과 인력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물량이 늘고 있는 구형 공정 D램과 8인치 파운드리 분야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중장기 사업 전략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구형 공정 분야의 생산라인과 인력을 최소화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선단 공정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삼성전자, 화성·기흥 중심으로 레거시 라인 조정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 13라인과 15라인 D램 생산공장의 가동률을 낮추는 한편 인력 재배치를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라인은 DDR4 D램 등 레거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거의 ‘풀가동’ 상태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화성 13라인과 15라인은 D램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산 품목이 혼재돼 운영되는 복잡한 구조인데, 최근 들어 구형 공정 D램 라인의 장비 가동률을 낮춰나가고 있으며 선단 공정으로의 전환 계획이 잇달아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형 공정 장비를 선단 공정 장비로 교체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파운드리 사업부 역시 경기 기흥사업장에 위치한 8인치 파운드리 라인 인력들을 재배치하고 있으며, 가동률도 크게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삼성전자의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의 가동률이 50%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의 8인치 파운드리 가동률이 올 하반기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이 안되는 사업은 정리한다’는 기조를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전 부회장은 올 3분기 실적 부진을 계기로 가장 오래된 D램, 파운드리 생산라인부터 손을 대고 있다. 특히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진행된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중국산 D램의 공세로 인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의 D램 공급량 증가에 따른 악영향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중국산 구형 공정 D램 공급량 증가로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LPDDR5 D램 첨단 제품 시장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부문별로 양상이 다르며 고성능 고사양 DDR5, LPDDR5는 아직 후발업체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中 레거시 D램·파운드리서 예상보다 성장세 빨라
중국의 국영 기업이나 다름없는 CXMT의 16나노급 D램은 저가용 디바이스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CXMT는 2016년 설립된 신생 회사로, 초기만 해도 한국·미국 기업들을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반도체 자립을 노리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단기간에 중국 최대 D램 업체로 성장했다.
공정 안정도와 수율도 빠르게 끌어올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CXMT의 주력 생산품목은 19나노급 D램 제품이 90% 이상을 차지했으나 올 2분기를 기점으로 17나노 비중이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확대됐으며, 내년에는 16나노 비중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파운드리 역시 미국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8인치 웨이퍼 팹을 중심으로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대만 TSMC 역시 직간접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는 전략을 택할 정도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올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8인치 파운드리 시장 침체를 인정했으며, 이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의 8인치 웨이퍼 생산량 확대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편 전 부회장은 올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구형 공정 관련 생산능력과 인력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르면 이달 중 조기 사장단 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는 12월 초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을 진행했지만,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부진이 이어지자 삼성 안팎에서 빠른 쇄신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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