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국기계연구원, 스마트제조장비 실증 실험동 가보니
“마치 기술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장면을 연출한 것 같다.”
지난 18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소재 한국기계연구원(이하 기계연). 정문을 들어서니 대단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나 볼법한 거대 가림막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의 핵심 인프라였던 시험선로를 철거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원내 구축된 1.3㎞ 시험선로는 언뜻 봐도 녹이 잔뜩 낀 흉물스런 모습이나 27년 전엔 기계연의 상징과도 같았다. 기계연 관계자는 노후화된 시험선로를 보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시험선로의 첫 시작점 인근에 지난달 ‘스마트 제조장비 실증 실험동’이 문을 열었다. 현실 세계의 기계, 장비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하는 기술인 ‘디지털트윈’과 같이 산업계에 적용할 수 있는 미래 제조·생산 기술을 실증 실험해 보는 곳이다. 기계연 관계자는 “1989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자기부상열차 개발을 시작해 1997년에 시험선로를 깔았다”며 “선로를 걷어낸 공간엔 앞으로 자율제조, 로봇 등을 위한 새로운 연구공간과 친환경 에너지 설비, 체험시설 등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제조장비 실증 실험동은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7500여㎡ 규모로 △자율작업 리빙랩 △초정밀 시스템 실험실 △3D프린팅 장비 실험실 △진동피로 실험실 △밸브 실험실 △로봇메카 실험실 △AI(인공지능) 소형시험기 실험실 △옴니텍스 실험실 △전자소자 3D프린팅 실험실 △광 메커트로닉스 실험실 △플라스마 기초·버너 실험실 등으로 구성됐다.
실험동 1층에 들어서자 가로, 세로 각각 3m, 4m 정도 되는 대형 첨단장비들이 놓여있고 본격 운영에 앞선 세팅작업이 한창이다. 내부는 두 개 영역으로 나눠 한쪽에선 공작기계 자동제어 전자모듈인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시스템 실증, 다른 쪽에선 스마트공장용 자율제조장비 실증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곳 책임자인 노승국 기계연 초정밀장비연구실장은 “아직 세팅작업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최신 공작기계는 정밀도가 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수준인 데다 쇠를 깎는 등의 진동을 동반하는 작업들이 많아 장비의 수평이나 고정 상태 등을 정교하게 맞추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1층 초정밀 시스템 실험실은 기계연이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공간이다. CNC 시스템 국산화의 최종 관문 역할을 맡아서다. CNC 시스템을 자동차로 따지면 엔진과 트랜스미션에 해당할 정도로 공작기계 기술의 핵심이다. 공작기계 원가의 30~40%를 차지할 정도지만 정작 국내 공작기계 시장에선 CNC 시스템 95% 이상을 일본과 독일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노승국 실장은 “2019년부터 산·학·연이 똘똘 뭉쳐 CNC 국산화를 추진해 왔고,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범용 공작기계를 대상으로 한 표준형 CNC 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상태”라며 “그 결실을 이곳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CNC 시스템 개발에는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연세대, 단국대 등 10개 대학, CNC 기술 공급업체 8곳 등이 참여했다.
2층 로봇메카실험실은 고난도 작업로봇, 인간·로봇협력기술, 농업·물류·산업 모바일로봇, 장애인·의료로봇 등 차세대 로봇 원천기술 개발 및 실증을 지원한다. 첨단로봇연구센터 박종우 선임연구원은 “AI 발전으로 로봇들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고, 인간형 로봇 기술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필수 전자기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대로보틱스(산업용 로봇), ATI(힘센서), 로보스타(말단장치) 등과 같은 로봇 관련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 수요에 맞춰 실규모 제조·작업 환경 실증을 지원,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이곳에선 사람처럼 양팔을 자유롭게 쓰는 양팔로봇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기계연이 개발한 모듈형 로봇 구동기를 기반으로 제작한 것이다. 양팔로봇 종류가 많았는데 이중 고중량 핸들링 양팔로봇은 최대 120kg까지 들어 옮길 수 있다. 전장에서 부상 당한 군인을 이송하거나 포탄을 나르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장을 겨냥함과 동시에 최근 ‘K-방산’ 붐을 이어갈 기술로도 주목을 이끌 전망이다.
류석현 기계연 원장은 “스마트 제조장비 실증 실험동을 통해 딥테크(첨단기술) 벤처·스타트업의 기술 상용화와 제조 혁신을 촉진, 신개념 제조장비 시장 창출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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