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던 한 우물만 파면 반드시 달콤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부모님께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끝까지 노력한다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에서도 이런 말을 쓰는 것일까? 볼보는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 달디단 결실을 맺었다.
볼보는 외골수 기질이 짙은 브랜드다. 제풀에 지칠 법도 했지만 ‘안전’과 ‘왜건’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안전=볼보’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안전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왜건 역시 그렇다. 줄곧 왜건을 만들던 볼보는 왜건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왜건을 수면 위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볼보의 V60 크로스컨트리와 V90 크로스컨트리를 손에 넣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만들기도 했다.
스웨디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디자인
볼보가 처음 크로스컨트리를 만든 건 1997년이다. 세단과 SUV를 절묘하게 섞은 크로스오버오버 성격이 짙었던 크로스컨트리의 인기는 상당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3월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플랫폼이라는 도화지에 쌓아 올린 크로스컨트리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실용성, 공간 활용성, 스칸디나비아 럭셔리 감성을 모두 갖췄던 탓에 오히려 눈길을 주지 않는 게 힘들 정도였다.
한국에 왜건 전성시대를 열었던 V90 크로스컨트리는 3년만에 스타일을 바꿨다. 사실 크게 변한 점은 딱히 없다. 디자인 디테일을 정교하게 다듬고 치장한 액세서리 정도만 바뀐 수준이다. 그렇다고 만족도가 낮다는 건 아니다.
먼저 전면 중앙에 자리잡은 3D 형태의 엠블럼과 새롭게 디자인된 라디에이터 그릴, 전방 안개등, 스키드 플레이트 등을 통해 분위기 변화를 시도했다. 누군가는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던 덕분에 소소한 변화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기존 모델 대비 20㎜가 늘어난 측면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특히 휠 아치 및 사이드 가니시가 눈에 띄는 부분인데 이는 V90 크로스컨트리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오프로드 주행 환경에서 혹시라도 도장면에 날 수 있는 생채기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패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로 험로를 주행할 때 이 가니시 덕분에 꽤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와 함께 글로스 블랙 사이드 윈도우 데코와 19인치 그라파이트 다이아몬드 컷 휠의 조화는 은은한 멋을 낸다.
스웨덴의 긴 도로를 형상화한 디자인의 테일램프는 여전하다. 다만 기존 형태는 유지하면서 시퀀셜 방식 턴 시그널이 추가됐다. 그리고 범퍼 하단에는 훈장과도 같은 ‘크로스컨트리’ 레터링을 음각으로 새겨 특별함을 더했다.
스웨덴 예테보리에 온 듯한 차분한 분위기
실내는 여느 볼보와 같다. 사용 편의성이 높았기 때문에 구성을 유지한 듯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차분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내 소재를 통해 완성도다. 프로 트림의 경우 시트 컬러에 따라 테일러드 인스트루먼트 패널 마감이 적용되는데 시승차의 경우 피치드 오크 우드를 적용해 따뜻한 느낌을 강조했다.
눈여겨 볼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 시장만을 위해 3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를 기반으로 하는 티맵 오토와 누구 오토, 플로가 통합된 것이 특징인데 사용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음성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물론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말귀를 꽤 잘 알아듣는 편이라 사용성이 한층 높아진 느낌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만족감을 줄 수는 있지만 물리 버튼을 극도로 삭제한 점은 마음에 걸린다. 음성으로 제어가 가능하더라도 사용 빈도가 높은 시트 열선 및 통풍 기능과 공조 기능 작동을 위한 버튼을 따로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2열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2열 도어 개구부가 좁은 편이기는 하지만 공간은 성인 남성 4명이 타도 결코 좁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다. 또 2열 승객을 위한 공조 장치 컨트롤러까지 마련하는 배려도 더했다. 기다란 차체 덕분에 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여행이나 레저 활동에 필요한 커다란 짐을 쉽게 집어삼킨다. 유모차를 싣는 것 역시 일도 아닐 정도로 넉넉하다. 참고로 V90 크로스컨트리의 트렁크 용량은 기본 551리터(ℓ)며 2열을 접을 시에는 1517ℓ까지 늘어난다.
250마력 맞아? 기대 이상의 출력
보닛 아래에 자리한 심장은 터보를 물린 직렬 4기통 2.0L 가솔린이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합세해 10킬로와트(kW)의 힘을 보탠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250마력, 35.7킬로그램미터(㎏·m). 재미있는 점은 이 출력이다. 3일 동안 꽤 긴 거리를 주행했지만 250마력의 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되려 300마력에 가까운 출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경쾌하게 속도계 바늘을 일으켜 세운다.
그렇다고 체통을 지키지 않고 촐랑거리지는 않는다. 명색이 90 클러스터에 속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체통을 잃는 법이 없다. 엔진과 손을 잡은 8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럽게 변속하는 데 집중했고 힘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타나는 불쾌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빠르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꽤 경쾌하게 속도가 붙는다. 정숙성과 승차감이 부드러워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V90 크로스컨트리를 시승하는 내내 서스펜션의 움직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앞은 더블 위시본, 뒤는 인테그랄 리프 스프링 구조인데 상당히 여유롭고 부드럽게 차체를 받들었다. 특히 높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감각이 훌륭했다. 일반적으로 후륜이 방지턱을 넘고 떨어질 때 툭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V90 크로스컨트리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잘 만들어진 푸딩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스티어링 감각 역시 여유로웠다. 일부로 급하게 이리저리 스티어링 휠을 휘감았지만 차체는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찌나 차분하게 움직이던지 되려 머쓱해지는 느낌이었다.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는 멋을 위해 타는 차가 아니다. 과시용도 아니다. 진짜 왜건을 좋아하고 갈망했던 이들을 위한 차다. 가족을 위해 혹은 라이프 스타일의 완성을 위한다면 V90 크로스컨트리만한 선택지가 없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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