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의 핵심 적층 장비인 ‘TC 본더’ 공급사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한미반도체가 해당 제품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 왔지만, SK하이닉스는 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싱가포르 ASMPT와 한화정밀기계 장비 등의 추가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 공급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한화정밀기계의 TC 본더 장비에 대한 품질 테스트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연내 SK하이닉스는 한화정밀기계와 공급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TC 본더는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을 완료한 반도체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다. 여러 개의 D램 칩을 쌓는 HBM 공정 수율(완성품 중 정상품 비율)을 좌우할 만큼 중요도가 높은 장비다.
지난 2017년 SK하이닉스와 HBM 적층 장비인 TC 본더를 공동 개발한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의 HBM 제조용 TC 본더 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 왔다. HBM 시장 점유율 1위인 SK하이닉스가 HBM 생산능력을 꾸준히 확대하면서 한미반도체의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늘었다. 한미반도체는 올 3분기에 전년 동기(29억원) 대비 30배 이상 늘어난 99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한미반도체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도 2658억원으로 전년(346억원) 대비 약 8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HBM3E 12단 양산을 앞두고 SK하이닉스는 TC 본더 장비 수급 안정화를 위해 멀티 벤더 전략을 택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범용 메모리 반도체가 IT 시장의 침체로 가격 상승세가 둔화된 가운데,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가 절감이 필요하다. 특정 장비사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칠 경우 장비사 사정에 따라 납품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올 초부터 SK하이닉스는 이미 한화정밀기계와 TC 본더 장비 테스트를 진행해왔으며, 품질 문제를 점검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이르면 연내 한화정밀기계의 TC 본더 장비를 생산라인에 투입할 예정이며, 싱가포르 ASMPT 장비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세대 주력 사업인 HBM 핵심 장비를 솔벤더(단독 공급사)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멀티 벤더 전략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강성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소재·부품대학원 교수는 “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화 차원에서 장비 공급사를 다변화하는 것은 반도체 제조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이라면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HBM을 엔비디아에 적기 공급하기 위해서는 양산에 차질이 생겨선 안 되기 때문에 핵심 장비 공급처를 여러 곳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기존 주력 제품이었던 HBM3E 8단과 달리, 12단의 경우 적층 과정에서 웨이퍼의 휨(Warpage) 현상 등이 심화돼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공급사 찾기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ASMPT 장비를 소량 공급받아 추가 도입을 검토하기 위해 시범 생산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한화정밀기계 장비도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기존 HBM3E 8단까지는 한미반도체 장비로 제품을 양산하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12단으로 단수가 높아지면서 열처리 등 개량된 기술이 탑재돼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미반도체 장비만으로는 제품 양산을 안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추가 공급사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HBM3E 12단 양산이 본격화되면서 TC 본더 장비 시장의 지형에도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한미반도체 경쟁사에 SK하이닉스가 기술 지원을 나설 만큼 공급망 다변화 의지가 강한 상황”이라며 “HBM3E 12단 양산 준비 과정이 TC 본더 장비 공급망에 변화가 생기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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