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미 휴머나이즈 최고과학자 인터뷰
“‘우르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메일을 자주 보낸다 같은 ‘부스러기 데이터’만을 모아도 이 기업의 장기 생산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매주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근처 식당에서 김태미 휴머나이즈(Humanyze) 공동 창업자 겸 최고과학자를 만났다. 휴머나이즈는 ‘인간화하다(Humanize)’와 ‘분석하다(Analyze)’를 합친 말이다. 점심시간에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우리는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휴머나이즈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협력하는지, 또 생산성은 얼마나 높은지, 인수·합병(M&A) 후 결과는 좋은지 등을 분석·예측하는 스타트업이다. 설문조사, 심층 인터뷰 등 경영학에서 고전적으로 해왔던 방법은 쓰지 않는다. 이메일 패턴, 미팅 스케줄링 패턴, 메신저 빈도, 모션 센서 데이터 등의 단서만을 모아 조직의 생산성, 만족도, 퇴사율을 분석해낸다. 창업자 3명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 박사과정에서 만났다. 본사는 보스턴에 있고 팰로앨토에도 사무실이 있다.
기자의 좌뇌는 이 스타트업의 문제 의식에 공감했지만, 우뇌는 ‘그래도 사람 관리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닌가’라고 했다. “네. 사람 문제를 수학 문제로도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임차료가 살인적이라는 휴머나이즈의 팰로앨토 사무실로 향했다. 커피 한잔을 두고 그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의사 소통 패턴 분석해 생산성 측정
―공동 창업자가 박사과정 동기생들이었다.
“그렇다. 공동 창업자 3명은 MIT 미디어랩의 휴먼 다이내믹스(Human Dynamics) 연구실에서 직원 간 협력 형태를 수치화하고 생산성을 모델링하는 연구를 했다.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내용을 전혀 모르고도 수치화할 수 있는 어떤 패턴을 찾아 이들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느냐’는 게 핵심 주제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이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나는 이 연구에만 12년 이상 몰두한 셈인데, 굉장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작은 단서만으로 어떻게 조직의 생산성이나 직원의 만족도를 분석·예측해 낼 수 있나.
“물론 매우 어렵다. ‘좋아요’ ‘팔로잉’ ‘리트윗’을 표시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친구 관계를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메일 패턴, 미팅 스케줄링 패턴, 메신저 빈도, 모션 센서 데이터 등 비(非)식별(익명화) 데이터를 모아 다차원적 데이터 세트를 만드는 게 첫째 관문이다. 데이터양이 많아지면, 조직의 네트워크 형태를 그릴 수 있게 된다. 협력을 잘하는 네트워크인지, 서서히 망하는 네트워크인지 보인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직원의 생산성, 만족도, 퇴사율을 예측하는 것이 둘째 관문이다. 각 단계에서 행동 과학 이론도 접목하고 ‘머신 러닝(기계 학습)’ 등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도 많이 사용한다.”
인사 관리에 분석 결과 적용
―사람 관리를 컴퓨터에 맡긴다는 게 매우 낯설다.
“공동 창업자인 벤 와버(현 휴머나이즈 사장)는 ‘피플 애널리틱스’라는 책을 2013년도에 썼다. 그때만 해도 새로운 콘셉트의 책이었지만, 요즘 미국 기업 사이에서는 ‘데이터를 쓰지 않고 인사(人事)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할 만큼 피플 애널리틱스가 널리 퍼졌다. 구성원의 성별·나이·학벌·거주지 등의 데이터를 뽑아 이 요소들이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급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경력의 사람을 뽑았더니 회사 근속 연수가 높았다는 식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휴머나이즈는 개인 역량이나 스펙보다 조직 내 사람들의 관계성, 다시 말해 네트워크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이걸 학문적으로는 ‘조직 분석학(Organizational Analytics)’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분야 개척자다. 요즘 크게 뜨는 분야다.”
―어떤 형태의 관계 네트워크가 나오면 건강한 조직이라고 평가할 수 있나.
“산업과 회사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첫째, 팀의 끈끈함이 중요하다. 둘째, 다른 팀 구성원과도 상호작용을 곧잘 한다. 자기 팀원끼리만 친하다면, 그것은 전체 구성원으로부터 그 팀이 ‘고립’돼 있다는 뜻이고 회사 성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팀 내 인터랙션과 팀 간 인터랙션의 황금 비율이 있다. 셋째, 오랜 시간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서 일주일에 평균 15분 이하로 만나는 사이가 많은 구성원들의 네트워크가 잘나간다. 업무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넷째, 부서를 연결하는 커넥터이자 구성원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성과도 좋다. 개인 단위보다 팀 단위로 보상을 해주면 좋다. 다른 부서와 연결하고 구성원의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장려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망하는 회사는 어떤 특징이 있나.
“확실히 다르다. 실패 연구도 많이 했는데, 점점 분파로 나눠지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부서와 부서 사이의 상호작용이 크게 줄어든다. 조직원의 다양성도 떨어진다. 한 사람의 성공 모델을 조직에 강요하면 전체 조직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은행 콜센터 잡담 많이 하는 팀이 성과 좋았다
악성 고객에 지친 신입 상담원들 동료 위로 받는 팀이 퇴사도 적게 하고 응대 속도도 빨라
미국의 한 대형 은행 콜센터는 여느 콜센터와 마찬가지로 점심이나 휴식을 순번제로 하고 상담원끼리 잡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팀은 고객 응대 성과가 좋은 반면 어떤 팀은 좋지 않았다. 경영진은 왜 이런 성과 차이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휴머나이즈에 도움을 요청했다.
휴머나이즈는 잡담을 많이 하는 팀, 점심도 같이 먹으려고 애쓰는 팀이 성과가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소 의외일 수 있는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콜센터 상담원들은 겨우 2주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별별 케이스에 대응할 노하우 없이 실전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또 소리부터 고래고래 지르는 악성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상담원의 퇴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잡담은 크고 작은 노하우를 배우는 훌륭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친 동료들이 서로 위로를 얻는 원천이었다.
콜센터 직원이 한둘일 때나 지켜야 했던 ‘잡담 금지’ ‘점심 순번제’ 원칙을 아무도 고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은행은 팀별로 점심을 같이 먹도록 오랜 전통을 수정했다. 그랬더니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매니저한테 물어보지 않고도 답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각종 성과 지표는 11%포인트가량 올라갔고 직원 퇴사율은 5%포인트가량 내려갔다. ‘저숙련→퇴사→신규 채용→저숙련→퇴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본 기사는 2020년 4월 17일 Weekly Biz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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