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기아 EV6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선보일 때, EV3의 이미지도 공개되었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EV3이 등장했다. 기아의 전기차 모델은 모두 EV라는 알파벳 약자의 뒤에 숫자를 붙여서 나타내는데, EV6이 준대형급 차체라면 EV3은 소형급, 또는 준중형급 차체 크기라고 보아도 무난할 듯 하다.
실제로 EV3의 차체 크기는 길이×너비×높이가 기본형 기준으로 4310×1850×1560mm에 휠베이스는 2680mm이다. 기아 니로의 크기 4420×1825×1545mm와 휠베이스2720mm와 비교된다. 즉 EV3은 니로보다 110mm 짧고, 25mm 넓고, 15mm 높다. 휠베이스는 40mm 짧다. 치수에 의한 비교로만 본다면 EV3은 차체에서 휠베이스가 긴 편이면서 너비와 높이를 확보한 공간 중심형 차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높이 치수가 모두 실내 공간의 높이로 쓰이기보다는 차체 바닥에 탑재되는 배터리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차체 치수 비례로는 공간 중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EV3의 측면 뷰를 보면 짧은 앞뒤 오버행과 짧은 후드 길이로 인해 실용 공간의 비중이 높은 차체 윤곽을 보여준다. 또 눈에 띄는 특징은 전반적으로 거의 평면에 가까운 팽팽한 곡면을 쓰면서 직선적인 모서리를 강조하는 조형으로 된 차체 이미지다. 즉 디지털 감성을 강조한 기하학적 조형으로 일관된 감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지 수직 수평에 의한 직선 디자인이 아니라, 45 각도 이미지의 사선 요소를 곳곳에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차체 측면에서 도어 아래쪽 검은색 띠가 휠 아치와 만나기 전에 사선으로 꺾인 그래픽이 시선의 흐름을 한 번 붙들고 있다. 이러한 사선 요소는 앞모습에서도 후드와 범퍼가 만나는 부분에서 검은색 띠처럼 간격이 만들어지면서 주간주행등과 수직 헤드램프로 이어지지만, 헤드램프 형태는 측면에서 보면 사선으로 꺾인 면에 의해 앞바퀴 휠 아치의 사선 형태와 어우러지고 있다.
앞 범퍼의 아래쪽에도 사선형 그래픽이 만들어져 있다. 테일 램프의 그래픽 역시 직선과 사선이 결합된 조형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기하학적 이미지의 디지털 감각이다. 사실상 오늘날 여러 메이커 차량들의 디자인 경향이 직선적 디지털 경향이기는 하지만, 최근 기아 EV 시리즈가 보여주는 디자인 감각은 다른 어느 메이커나 브랜드-가령 폴스타 같은 브랜드 역시 직선적이지만-와는 또 다른 인상의 독창성이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산 신형 차량의 디자인이 어느 외국 브랜드의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2010년을 전후해서 그런 인상은 확실히 사라졌다. 이제는 어느 브랜드를 닮은 차가 아니라 기아는 기아의 차이고, 현대는 현대의 차라는 인상이 확연해졌다. 그런데 사실 이건 디자인의 문제만은 아니라 기술의 독자성과 자신감도 함께 생기기 시작한 것에 의한 복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겉모습만 그럴 듯 하게 만든다고 해서 독자성 있는 차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술적 확신의 느낌은 실내에서도 나타난다. 수평 기조의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스티어링 휠 디자인, 그리고 오렌지 색상의 무드 조명 역시 그런 인상을 준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에 만들어진 감각적 디테일은 단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디자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 부분이다. 이런 디테일의 디자인을 제안하고, 또 그런 디테일을 승인하고 설계해서 양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건, 기업 전체에서 이런 감각적 요소까지도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감각적 요소는 좌석의 등받이에서도 눈에 띈다. 그리고 기하학적 그래픽의 휠 디자인 역시 비대칭적 개념의 휠-물론 완전히 비대칭은 아니지만-을 양산형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디자인의 휠보다 더 많은 설계적 고려 사항과 성능 테스트 등이 요구된다.
새로운 EV3은 전기차 감성을 강조한 디자인만을 보여준다기보다 기업의 디자인 이해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새로움 속에서도 EV3은 SUV로서의 기능도 변함 없다. 해치백 구조이면서 공간 활용성을 가진 것은 물론, 성능을 높인 GT 라인 역시 차별화되는 디테일의 디자인으로 나온다. 게다가 제시된 이미지에는 EV3가 전동 킥보드를 충전하는 에너지원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쩌면 전기 동력 SUV는 엔진 동력의 SUV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유틸리티(utility), 즉 활용성을 제공하는 차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SUV의 개념이 등장 하면서 4륜구동 차량이 험로 주행 에서 전천후 기능과 공간 활용성의 장점으로 승용차의 한계를 뛰어 넘었듯이, 전기 동력 차량 기술은 성능이나 활용성의 한계를 더 크게 넓혀주면서 우리들이 더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자동차로 탈바꿈시킬지도 모른다. 전기 동력 차량은 분명히 자동차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술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만나보는 EV3은 그러한 새로운 기술의 자동차를 새로운 감성의 디자인으로 보여주고 있다
글 구상 자동차 디자이너,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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