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공지능(AI) 입법과 관련해 선진국 대비 3년 정도 뒤처져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시행착오를 겪은 걸 교훈 삼아 AI기본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10월 2일 국회에서 만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의 주문이다. 그는 구글 출신의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원, 구글 코리아 프로덕트 매니저, 구글 본사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오픈서베이 최고제품책임자(CPO·Chief Product Officer) 두루 거친 인재다. 올해 4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3번으로 22대 들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해민 의원은 “AI기본법과 이용자 윤리와 관련한 제도를 만들고 싶다”며 “제도를 논의하는 입장에서는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많지만 사업자를 생각하면 이미 너무 많이 늦었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며 “우리 중 그 누구도 AI가 가져올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도는 커다란 그릇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기본적인 룰 세팅에 집중해야 한다”며 “현재 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해민 의원과 일문일답
―22대 국회에서 미래 먹거리 전반을 다루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활동을 하고 있다. 3개월간 느낀 점은
“다른 상임위에 비해 과방위 전체회의가 많다. 이는 긍정적이다.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한꺼번에 한 듯 하다. 다만 과방위가 다루는 영역이 굉장히 방대하다. 때문에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정보통신기술(ICT), 방송, 통신,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을 모두 균일하게 다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아 아쉽다.
특히 과학기술 쪽은 전문 분야가 많은데 국회는 하나하나 심도 있게 논의를 할 분위기가 아니다. 제가 갖고 있는 전문성을 그 자리에서 아주 빨리 풀어내야 하는 상황인데, 최근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이런 점이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 느꼈다.”
―AI기본법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국회에 들어와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점은 정부 R&D 예산과 AI기본법 두 가지였다.
현재는 글로벌 AI 패권 전쟁 중이다. AI 기술이 돌아가려면 데이터센터가 존재해야 하고 데이터센터 안에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는 발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얘기가 동시에 나와야 한다. AI 하나가 자국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 국가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이유다. 3년 전만 해도 유럽은 AI 관련해서 입법보다는 규율을 강화했다. 미국은 빅테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진흥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규율과 진흥이 만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진흥 위주였다가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 저작권 문제가 튀어나오니까 상원 의회에서 AI 로드맵을 내놨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강한 AI 규제법이 등장했다. 미국조차도 이제 유럽의 움직임이던 AI 규제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AI 규제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구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선진국 대비 3년 정도 뒤처졌다. 계속 3년을 뒤처지게 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는 유럽과 미국이 시행착오를 겪은 것을 교훈 삼아 가장 빠르게 말이 되는 AI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AI 기술이 다른 나라에서 안 돌아가면 안 되지 않나. 국제 상호운용성을 가져가야 한다. 즉 가장 말이 되고 국제적인 트렌드까지 생각해야 한다.”
―제4이통사를 탄생시키려던 정부 정책이 8번째 실패했다. 업계는 “예상했던 결과”라고 평가한다
“통신 정책은 분명한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통신 기술을 활용해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기본 목표라고 본다. 통신 사용자 입장에서 조금 더 싸게 통신을 이용하고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목적에 포함된다. 이러한 여러 스펙트럼을 다 보고 그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게 정부 정책이다.
하지만 제4이통사 정책은 되게 독특하다. 정부 등에 제4이통사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가계통신비를 낮추고 어쩌고 한다. 제4이통사를 만드는 목적성 자체가 희석되거나 문제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가 봤을 때 정부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부가 이 문제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계속 정책을 펴다 보니 좌초를 반복하는 것이다. 다시 제대로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이동통신 3사의 독과점 구조, 가계통신비 부담 이슈 문제가 해마다 반복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 모두 소외된 곳 없이 통신이라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위를 보면 “난 전화만 하면 돼”, “나는 문자만 보내도 돼”, “다른 콘텐츠는 필요 없어”라는 이들이 있다. 반면 새로운 휴대폰이 나올 때마다 사는 게 즐거움이라는 이도 있다.
가계통신비가 비싸다는 문제가 매년 반복하는 이유는 정부가 큰 그림은 안 보고 정책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단말기 비용이 비싸서 가계통신비가 비싸다거나 아니면 이통사 요금제 비용이 비싸서 가계통신비가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정부는 국민에게 여러 선택지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말기 비용이든 이통사 요금제 비용이든 정부는 국민이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줘야 한다. 정부가 통신 관련해서 정말 문제의 정의부터 큰 그림을 다시 짜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다음 국민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최근 KT 최대주주가 국민연금공단에서 현대차로 바뀌었다
“최근 벌어진 일이라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는 조금 조심스럽다.
우선 현대차가 추구하는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등과 통신사인 KT 간 협력이 기대된다는 점이 아주 큰 부분일 것이다. 현대차가 이 점을 생각해 KT 최대주주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측은 한다.
다만 통신은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다. 민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대주주로 있는 상황에서 결국 그 회사의 이윤에 맞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이게 국민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 국가가 통신을 가지고 있었으면 A라는 옵션을 선택했을 텐데 현대차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B라는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는 상황이 분명히 온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 우려가 크다. 제가 미국에서 살 동안 기관, 시설 등을 민영화했을 때 요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사용자가 얼마나 큰 피해를 겪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바람이 불면 전기가 툭 나가기도 했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은 충분히 올 수 있다고 본다.”
―’구글플레이스토어’와 ‘애플스토어’가 마켓에 입점한 업체로부터 막대한 수수료를 걷어가고 있다. 특히 ‘인앱결제’(앱마켓 운영업체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결제시스템) 수수료만 30%가 넘는데
“결국 웹 개발자 선택의 문제다. 왜 웹 개발자들이 비싼 수수료를 감수하고도 구글과 애플만을 찾아가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채널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앱 스토어 경쟁력을 키워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앱스토어가 구멍가게 채널이면 안 된다. 우리 앱 스토어도 애플과 구글처럼 파워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진흥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규제 사각지대에서 수익만 거둬가는 구글·넷플릭스·유튜브 같은 글로벌 기업이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 플랫폼도 방발기금을 내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기업도 납입 의무가 없다.
무엇보다도 현행 정보통신기술(ICT) 기금인 방발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7월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을 ‘정보통신방송발전기금’으로 통합하는 ‘ICT 기금 통합법’을 대표발의했다. 여야 모두 찬성하고 있다. 두 기금을 통합해야 시너지가 발생하고 중복 투자를 줄일 수 있다. 이 문제는 언론이 더 다뤄줬으면 좋겠다.”
―과방위 활동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과제나 목표는
“AI기본법과 이용자 윤리 제도를 만들고 싶다. 제도를 논의하는 입장에서는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너무 많긴 하지만 사업자를 생각하면 많이 늦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고 우리 중 그 누구도 AI가 가져올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제도는 커다란 그릇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기본적인 룰 세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재 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최근 논란이 된 딥페이크 범죄 때문에 기술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하지만 기술은 죄가 없다. 이를 잘못된 목적으로 나쁘게 이용하는 것이 문제다. 이를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 그만큼 이용자 윤리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의 정상화를 반드시 이루고 싶다. 이는 제가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다. R&D 예산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뒤늦게 복원을 했지만 단순히 숫자만 복원된 것이다.
대통령은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는 듯 하다. 벌써 이러한 불확실한 정부 정책에 휘둘리기 싫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신진 연구자들은 이미 벌써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제라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제 역할을 하겠다.”
IT조선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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