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다. 보통 맨 꼭대기 자리는 치열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의 것이 된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뿐인 메달을 걸고 경쟁하는 스포츠와 같다. 국가는 물론이고 꽤 많은 차종이 싸운다. 심지어 같은 집안끼리도 싸움이 붙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아와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K8과 그랜저다.
사실 기아는 그랜저의 아성을 뛰어넘은 적이 없다. K7도 그렇고 얼마 전까지 팔리던 K8도 그랬다. 그랜저야 워낙 역사가 긴 모델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성공‘의 대명사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는 K8을 앞세워 호시탐탐 그랜저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번에는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그랜저에게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부분변경 맞아? 스타일 완전 바꾼 더 뉴 K8
처음 더 뉴 K8을 마주했을 때 느낌은 하나였다. ‘파격’ 그 자체다. 말 그대로다. 일반적으로 부분변경 모델이라면 화장법을 살짝 고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아는 달랐다. 세대 변경과 같은 수준으로 디자인을 뜯어고쳤다. 특히 전면 인상에서는 이전 K8의 인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바뀌었다.
전면부는 기아의 최신 패밀리룩 디자인이 적용됐다. 차체를 가로지르는 라인에는 패턴이 적용된 조명이 더해졌으며 이 라인은 기아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인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과 부드럽게 연결된다. 세로로 길게 떨어지는 주간주행등과 헤드램프는 미래지향적이면서 입체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면 인상을 좌우하는 그릴은 극도로 얇아졌다. 전기차와 비슷한 독특한 그릴 디자인이 약간은 어색할 수 있지만 가로와 세로 요소와 함께 어우러지고 차체 컬러가 더해지면서 만족도가 높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측면이다. 이전 모델과 큰 변화는 없지만 현대 그랜저와 달리 낮게 흐르는 루프라인 덕분에 아쌀하게 멋진 맛이 있다. 마치 패셔니스타 삼촌이 탈 법한 느낌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휠이다. 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각을 사용한 디자인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오히려 기존 디자인 혹은 원의 요소로 완성했다면 전체적인 디자인을 구성하는 직선과 어우러지지 않았을 느낌이다.
후면은 기존 K8과 크게 다르지 않다. 테일램프를 구성하는 그래픽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범퍼를 가로지르는 라인과 테일램프가 전달하는 안정감이 꽤 좋다. 특히 전면 디자인과 통일성이 높다. 비로소 전체적인 디자인이 완성된 느낌이다.
새로움보다 완성도 높인 실내
실내는 기존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각적 변화보다 기능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모양새다. 특히 눈엣가시처럼 보이던 기손 스티어링 휠을 떼어내고 기아의 최신 디자인으로 완성한 스티어링 휠을 넣었다. 무척 반가운 변화다. 개인적으로 기존 모델의 스티어링 휠 디자인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를 한 느낌이 강했다. 반면 더블 디컷의 새로운 디자인은 수평 형태의 센터패시아, 대시보드, 도어 트림의 실내 디자인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제야 뭔가 완성된 느낌이다.
편의성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히 센터 터널을 구성하고 있는 기능들의 구성이 좋다. 먼저 넓은 수납공간에 두 개의 휴대폰 무선충전 기능을 더한 점은 만족도가 높다. 덕분에 휴대폰 충전을 위해 조수석 승객과 실랑이를 벌이 필요가 없어졌다. 또 조작 버튼을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점도 마음에 든다. 다만 공조 장치와 미디어를 통합한 터치형 조작부는 살짝 조작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 외의 구성은 차급을 뛰어넘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의 ccNC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고 음성 인식으로 각종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또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듣는 즐거움을 전달하고 필러부터 천장까지 덮고 있는 알칸타라 헤드라이너는 고급스러움을 높이는 요소다.
실내 공간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1열은 물론이고 2열 공간 역시 무척 널찍하다. 성인 남성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도 앞좌석 시트가 거슬리는 경우가 없다. 또 가운데 암레스트에는 인포테인먼트를 조작할 수 있는 버튼을 마련했다. 아울러 2열 전용 송풍구와 공조장치, USB 충전 단자, 창문 및 리어 윈도 햇빛 가리개, 열선 및 통풍 시트 등 준대형 세단 이상의 편의사양이 적용됐다.
부드럽게 힘을 쏟아내는 파워트레인
더 뉴 K8의 안팎을 자세히 살펴본 후 잠자고 있던 엔진을 깨웠다. 기어를 물리고 차체를 움직이는 순간, 그리고 시승을 마친 지금까지도 그 감각이 잊혀지지 않는다. 더 뉴 K8의 움직임은 매우 오묘했다. 볼멘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나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완벽하지도 않다. 정확히 좋고 나쁨의 중간 느낌이다.
시승차의 경우 2.5리터(ℓ) 직렬 4기통 심장을 품고 있는데 이 엔진은 터보차저나 슈퍼차저와 같은 거추장스러운 과급기를 달지 않은 자연흡기 방식이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손을 잡고 앞바퀴를 굴린다.
초반 가속 느낌은 꽤 적극적이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최고출력 198마력, 최대토크 25.3킬로그램미터(㎏·m)의 힘이 경쾌하게 속도계 바늘을 일으켜 세운다.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전혀 힘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쾌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주행 만족도를 높인다. 더 뉴 K8은 통행이 드문 새벽 가로등 빛을 받으며 유유자적 누빌 때 매력의 진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반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밀어 넣고 고속 영역에 다가갈수록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부드러운 가속 느낌은 마음에 들지만 살짝 뒷심이 약간 딸리는 느낌이다. 물론 더 뉴 K8과 같은 준대형 세단으로 미친 듯한 속도감을 즐길 사람은 없겠지만 200마력이 채 되지 않는 힘은 아쉽게 느껴진다. 시원하고 여유로운 출력을 원한다면 3.5ℓ 가솔린이나 1.6ℓ 터보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차체의 움직임이다.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전장이 5미터(m)가 넘고 허리를 길게 늘린 준대형 세단이지만 서스펜션 감각이나 차체의 거동성의 완성도가 높다. 스티어링 휠을 과감하게 돌렸을 때 빠르지는 않지만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는 감각이 꽤 믿음직스러웠다. 또 약간 탄탄하게 세팅된 서스펜션은 기분 좋은 거동을 완성했다. 점잖을 빼는 것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움직임 덕분에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시승차의 경우 헤드라이너에서 미세한 잡음이 발생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모기가 귓가를 맴돌며 ‘위잉’거리는 소리처럼 매우 신경이 거슬렸다. 누적 주행거리가 고작 1000㎞도 넘지 않은 새 차, 그리고 고급 세단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더 뉴 K8은 그랜저가 앉은 왕좌를 빼앗기 위해 절치부심한 느낌이 많이 든다. 파격적인 디자인 변화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편의사양, 부드러운 엔진 감각은 고급차라는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그랜저와의 싸움에서 밀려 숱하게 고배를 마셨던 K8은 잊어야 한다. 더 뉴 K8은 지금까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매력 짙은 세단으로 변했다. 역시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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