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댓글 작성자의 국적 등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법안 발의를 시사했다. 중국발 댓글 논란에 대응하는 차원인데 과도한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동소이한 법안을 발의하자 국회 수석전문위원, 업계, 시민단체 등은 오남용 가능성이 큰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30일 온라인 댓글 작성자의 국적과 접속위치 표기 등을 의무화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의원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네이버, 다음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운영하는 모든 댓글에 작성자의 국적, 접속 국가 등을 표기하도록 했다. 우회 접속을 할 경우를 대비해 우회접속 여부 표기를 의무화한다. 또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댓글 작성자 국적 등 자료를 6개월 이상 보관하고, 정부 요청시 이를 제출하는 내용도 담는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나경원 의원은 “법 개정을 통해 국내 사이버 공간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해외발 여론 조작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 김은영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홍석훈 국립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산업 분야 기사에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이 한국산 제품을 폄하하고 중국산 제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댓글을 반복적으로 쓴 정황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에는 ‘과잉 입법’ 우려가 예견된 상황이다.
나경원 의원이 추진하는 법안은 21대 국회 때인 지난해 1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판박이다. 해당 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하는 댓글에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국적 내지 국가명, 우회 접속 여부를 표시하는 의무를 강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
당시 김기현 의원 법안을 검토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고 우회접속 여부 판단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검토보고서는 “작성자의 특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실제 국적과 접속지 기준 국가명 사이 불일치로 인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법안은 국적 표기를 강제할 것으로 보이는데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하지 않는 한 사업자가 이용자 국적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미 위헌 결정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접속위치를 기준으로 국적을 표기하는 방안은 도입할 수 있지만 이는 실제 국적과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간과한다. 특히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이용자들이 국내 서비스를 쓰게 되면 ‘여론조작을 하려는 외국인’으로 오해될 수 있다. 중국에선 국내 포털을 이용하지 못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네이버를 이용하려면 우회접속 방식을 써야 한다. 이 경우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오해할 수 있다.
실제 우회접속 여부를 완벽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는 김기현 의원 법안에 관해 “우회접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IP 주소를 수집 및 분석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추가적인 기술적 장치와 막대한 비용 투입이 요구된다”며 “IP주소 기반 판단이 정확도가 떨어져 부가통신사업자도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이 국내 여론을 호도하는 점은 문제가 있지만 이를 막겠다는 이유로 오남용 소지가 강한 과잉 규제 논의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2월 사단법인 오픈넷은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부터가 불분명해 입법 목적의 정당성부터 결여된 규제”라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자국 내에 위치한 사람들의 의견만이 진정하고 건전한 여론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으며 특정 국가 출신 개인 내지 단체 등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부당하고 유도, 조작되지 않은 대한민국 내 건전한 민주적 여론이란 그 실체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또한 해당 법안이 불명확한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과도한 정보를 수집한다며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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