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찾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시관 한편에는 ‘쏘나타 EV’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현대차는 1991년 11월에 이미 쏘나타를 연구용 전기차로 내놨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70km에 불과하고 배터리를 많이 장착하느라 실내가 비좁긴 해도 30여 년 전 만들어졌단 점을 감안하면 과거 일각에서 나오던 비아냥거림 ‘소나 타는 차’로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전기차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투박한 쏘나타 EV는 현대차그룹의 헤리티지(유산)인 “이봐, 해봤어?” 정신이 집약된 대표 상품이다. “이봐, 해봤어?” 혹은 “임자, 해봤어?”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회사 임원들이 회의에 나타나 ‘이 사업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업은 저래서 안 된다’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정 창업자는 묵묵히 듣다가 불쑥 “이봐, 해봤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도전해 볼 생각조차 안 하는 모습에 임원들의 이름이나 직급도 다 제쳐버리고 일침을 놔버린 것이다. 무리해 보였던 사업들도 정 창업자가 나서 끈덕지게 챙기자 기적처럼 성공 궤도에 오르는 일이 반복됐다. 이러한 정 창업자의 ‘이봐, 해봤어?’ 정신은 현대차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등장해 회사의 헤리티지로 자리 잡았다.
● “미쳤다” 소리 들으며 만든 포니
현대차가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승용차인 ‘포니’도 “이봐, 해봤어?” 정신 없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1968년부터 포드의 소형 세단 ‘코티나’를 조립해 판매하던 현대차는 한국형 승용차 개발을 추진했으나 사내 반대에 부딪혔다. 신차를 만들 만한 기술력이 부족한 데다 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창업자는 포니 개발을 밀어붙였다. 이수일 전 현대차 기술연구소장은 “당시 연 4000대만 팔아도 연말에 맥주 파티를 할 정도였는데 갑자기 연산 5만6000대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 하니 제대로 된 사업 규모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심지어 ‘현대차가 저것 때문에 망할 것이다’, ‘미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차 엔지니어들은 차량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미쓰비시에서 수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연수를 끝내고 밤에 돌아와 오후 10시까지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일본어 공부도 한두 시간씩 하는 강행군이었다. 울산공장 전시관엔 엔지니어들이 노트에 빼곡하게 일본어 알파벳인 히라가나를 적으며 공부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힘들게 탄생한 포니는 1975년 12월 양산을 시작해 판매 첫해인 1976년 시장점유율 43%(1만726대)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현대차는 이번 달 달성이 유력한 ‘누적 판매 1억 대’를 기념하기 위해 울산공장에서 행사를 준비 중인데 이 또한 포니가 없었다면 넘보기 힘들었을 성과다.
● 1991년에 이미 개발했던 전기차
현대차의 “이봐, 해봤어?” 정신은 전기차 개발로도 이어졌다. 쏘나타 EV 실무 개발을 이끈 이성범 전 현대차 수석연구원은 1990년 1월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완성차 전체 판매 대수의 2% 이상을 완전 무공해 자동차로 판매하라’는 의무 규정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기차가 없다면 당시 한창 공을 들이던 미국 수출을 접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수석연구원을 포함해 개발자 8명이 회사의 특명을 받고 울산에 모여 쏘나타 Y2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2년 만에 만들어냈다.
이 전 수석연구원은 “참고할 다른 전기 승용차도 마땅치 않아 전동 골프카트를 분해해 살피면서 제작했다”며 “쏘나타 EV에 전원을 연결했다가 갑자기 차에서 10∼20cm 불꽃이 치솟기도 하고, 거의 다 완성했는데 작동이 안 돼 다시 해체했다가 조립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 주행시험장에서 시험 운전을 했는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내질렀다”며 “시행착오가 쌓여 현재의 전기차가 나온 것이기에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무작정 유럽, 미국 찾아가 구한 반도체
가장 최근 현대차의 “이봐, 해봤어?” 헤리티지를 엿볼 수 있었던 사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2020∼2021년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응이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자칫하면 차량 생산을 멈춰야 하는 위기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현대차그룹 구매본부 임직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전 세계가 ‘셧다운’돼 항공기 운항이 크게 줄었음에도 표를 구해 거의 매주 유럽, 미국 등지로 향했다. 만나주려는 사람이 없어 유럽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임원 집 앞으로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텅텅 빈 비행기에 혼자 앉아 출장을 갔다. 코로나 시국에 해외에 나가니 가족들이 걱정했던 기억도 난다”며 “호텔에 일종의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해외 차량용 반도체 직원들을 초청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해외 경쟁사들이 발만 구르는 상황 속에서도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어떻게든 구해 큰 차질 없이 차량 생산을 이어갔다. 현대차그룹이 2022년 처음으로 생산량 기준 글로벌 3위에 오른 것도 당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관리를 전투적으로 해낸 덕이었다.
현대차가 이 같은 헤리티지를 앞세워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네시스의 유럽 판매 활성화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현재 국내와 북미 시장에서 주로 팔리고 유럽에서는 존재감이 약하다. 100년가량 명성을 쌓아온 유럽 고급차 브랜드들이 시장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차가 주도하고 있는 수소차 생태계를 업계의 회의적 시각을 딛고 궤도에 올리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울산=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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