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공지능(AI)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정부가 AI 규제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소버린 AI’ 등 우리나라 기업이 공략할 수 있는 분야를 지원하고, 우리나라 제조기업과 AI 기업이 협력해 동반 진출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지난해 공개한 ‘제4차 글로벌 AI 지수(The Global AI Index)’에 따르면, 올해 세계 주요 62개국 중 우리나라의 종합 AI 경쟁력은 6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국가는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다. 우리나라는 2020년 8위, 2021년·2022년 7위에서 올해 6위까지 순위가 상승했다.
특히 개발 부문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개발 부문은 AI 개발을 위한 플랫폼 경쟁력과 알고리즘 설계 기술력 등을 평가하는 지표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등 대기업이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단행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에는 교육이나 의료 분야 등을 중심으로 특화된 AI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많다. 의료용 AI 진단 솔루션 업체인 ‘뷰노’, AI 기반 외국어교육 스타트업 ‘뤼이드’ 등이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AI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포진했다.
하지만 국내의 AI 정책 환경은 이를 뒷받침하고 못하고 있다. 한 예로 22대 국회에서는 AI 기본법을 발의했지만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반면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은 8건이나 발의됐다. 기업 자율을 저해하는 이 같은 규제 환경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만의 특화된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대표 지원 분야로는 ‘소버린(주권) AI’가 꼽힌다.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모델이 발전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디지털 주권 차원에서 소버린 AI를 주목하고 있다. 소버린 AI는 자국·자체 데이터와 인프라와 함께 지역 언어와 문화, 가치관 등을 반영한 AI 서비스를 말한다. 미국 빅테크 중심 AI에 가치관이 종속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기술을 반영할 수 있다.
프랑스 미스트랄AI의 생성형 AI ‘르 챗(Le Chat)’이 대표 예다. 또 싱가포르가 엔비디아와 협력해 동남아시아 언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든 거대언어모델(LLM) ‘씨 라이언(Sea-Lion)’, 중국의 스타트업 ‘문샷 AI’가 만든 중국어 문장 처리 특화 챗봇 ‘키미’, 대만이 중국 플랫폼에 맞서 제작한 AI 챗봇 ‘타이드(TAIDE)’ 등이 대표 소버린 AI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와 함께 KT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소버린 AI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소버린 A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또 AI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제조기업과 같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AI 기업만 따라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보다는 플랜트나 다른 여러 가지 분야를 접목하는 방안을 정부가 구상할 수 있다”면서 “기존의 제조기업과 AI 기업을 ‘커플링’하는 전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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