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테츠 산업 기반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 콘텐츠 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을 넘나들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드라마·예능 등 지상파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웨이브는 미국에서 K-팝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드라마 제작사는 회귀·빙의·환생이라는 웹툰·웹소설의 주요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미디어 업계에 위기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를 주최했다. 이날 OTT·신문·드라마·웹툰 분야 전문가들은 AI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콘텐츠 기업이 생존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한국 관심과 콘텐츠 소비는 별개”
노동환 웨이브 정책리더는 ‘오징어게임’, ‘무빙’ 등 한국에서 제작된 OTT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들 콘텐츠가 온전히 한국 문화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오징어게임’에 대한 성공을 넘어, 한국 콘텐츠 확산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노 리더는 “미국 지인에게 ‘오징어게임’’이 어디 콘텐츠인가’라고 물어보니 ‘넷플릭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과 콘텐츠 소비가 많은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콘텐츠 장르를 세분화해 각 국가별 최적화된 소비 방향을 찾는 게 중요하다. 웨이브 아메리카 역시 K-팝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환 리더는 최근 ‘오징어게임’ 등 K-콘텐츠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 리더는 “넷플릭스가 국내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는 글로벌 단가”라며 “이 때문에 글로벌 단가가 국내에 적용됐고, 제작단가의 상승으로 사업자가 어려움에 처했다. (국내 OTT 사업자도) 글로벌 시장에 나아가야 하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시장 점유율은 더 고착화됐고 결국 K-콘텐츠의 시장 점유율을 유의미하게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환 리더는 티빙·쿠팡플레이 등이 KBO·NFL·AFC 등 스포츠 중계권을 통한 가입자 유치에 나선 것을 두고 “시즌 후 공백기간에 대한 고민이 있다. 스포츠 중계권을 위해 가입한 이용자들을 드라마나 예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가입자 유지를 위해선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류현정 조선비즈 콘텐츠전략팀장은 짧고 간략한 콘텐츠 중심의 스마트폰 양식을 맞추지 못하는 콘텐츠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만화·소설 역시 웹툰·웹소설 등으로 형식을 바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류 팀장은 “10분 안에 기승전결이 끝나고, 다음 편을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게 지금의 작법”이라며 “지금의 미디어는 스마트폰이고, 스마트폰이 곧 메시지다. 스마트폰에 맞추지 못한 콘텐츠는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 했다.
신문 역시 새로운 포맷을 맞춰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류 팀장은 “한 신문사 관계자가 ‘하루에 커피 3~4잔 마시면서 신문은 왜 구독하지 않냐’고 했는데, 신문 구독료가 커피보다 좋다고 하기 힘들다”며 “결국 중요한 건 어텐션(주목)이다. 신문, 방송, 영화 등 모든 콘텐츠 기업이 어텐션이라는 하나의 그라운드에서 경쟁하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더 이상 경쟁사가 아니며 텍스트 미디어를 지켜나가는 협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회빙환 트렌드 따라가는 드라마… 숏폼 콘텐츠도 적극 도입
드라마 업계에선 웹툰·웹소설에서 유행하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트렌드에 따라 제작에 나서고 있다. 김지연 팬엔터테인먼트 선임프로듀서는 “웹툰·웹소설 등을 차용한 드라마는 처음 기획 단계에선 기피됐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현재 드라마는 판타지적 요소를 갖추고 있고, 자연스럽게 드라마 시장이 웹툰이나 웹소설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 프로듀서는 최근 팬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예로 들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주인공이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내용의 드라마다. 김 프로듀서는 “시청률은 4%대지만 65개국에서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틱톡 드라마 부문에서 누적 데이터 톱5를 기록했다. OST 음반은 1만 장 이상 판매했다”며 “이제 슈퍼IP(여러 분야로 확장된 지적 재산권)를 발현할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다만 최근 배우 출연료와 제작비가 상승하는 등 여러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지연 프로듀서는 소비 흐름이 소설책에서 웹소설로,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바뀐 것처럼 드라마 역시 숏폼(짧은 분량의 영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프로듀서는 “거시적으로 드라마가 웹툰·웹소설의 흐름을 따라갈 것”이라며 “숏폼 콘텐츠에서 드라마가 소개되면 티빙의 드라마 순위가 높아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용자가 숏폼을 통해 드라마를 소비하고 있는 기록을 발견했으니, 이 포맷에 맞게 어떤 것을 수정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김지연 프로듀서는 드라마 콘텐츠에 웹툰·웹소설과 같은 단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OTT의 확산으로 영상 콘텐츠를 개별 구매하는 경우가 적은데,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프로듀서는 “드라마에 투여되는 자본은 많은데, 현재는 (OTT) 월정액으로 무료 배포되고 있다”며 “수익구조를 거시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창작자-제작사 장벽 무너진 웹툰 업계… AI 활용해 먹거리 발굴
웹툰 시장은 디지털 대전환 시기를 맞으며 창작자와 제작사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웹툰 제작 기기의 대중화와 AI의 등장으로 창작자들이 제작사 도움 없이 웹툰을 제작할 수 있게 됐고, 반대로 제작사 역시 창작자 도움 없이 웹툰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약한 영웅’, ‘궁’ 등을 제작한 웹툰 스튜디오 재담미디어의 박석환 전략사업본부 이사는 “작가와 제작사의 일이 혼합되기 시작했고, AI가 발전하면서 그 고민이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작가가 웹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AI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 만화를 AI로 각색한 형태의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재담미디어는 ‘공포의 외인구단’, ‘떠돌이 까치’,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등을 그린 이현세 만화가와의 협업을 통해 ‘AI 이현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AI로 이현세 만화가의 과거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석환 이사는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모일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대표작가로 이현세 만화가를 모셔 온 것”이라며 “이현세는 시대를 초월하는 한국만화의 대표 아이콘이다. 현재 이현세 만화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델을 만들고, 코드값을 설정하는 중이다. 올해 연말이면 완성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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