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핵심 계열사인 한미약품 이사진 교체를 두고 큰 충돌이 예고됐다.
당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싸움으로 시작된 이권다툼이 한미약품 내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면서, 각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약품은 이사회를 통해 임종윤 사내이사의 단독 대표이사 선임 안건과, 북경한미약품 동사장 교체 및 동사 선임 안건 모두 부결했다. 한미약품 대표직을 노린 고(故) 임성기 창업주 장남 임종윤 이사의 시도가 불발된 것이다.
이미 임종윤 이사의 한미약품 이사회 소집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달 28일 박재현 한미약품 전 대표가 하루아침에 전무로 강등, 제조본부를 담당하는 역할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전문경영인인 박 전 대표는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의 측근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오후 한미그룹 인트라넷에 본인 명의로 인사를 내며 경영관리본부 안에 인사팀과 법무팀 등을 신설, 한미약품 내 인사조직을 새롭게 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보통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인사팀이 한미약품 인사를 관할하는데, 이와 같은 조직 신설은 지주사로부터 독립된 인사 권한을 만들겠는 시도다. 그로부터 1시간 뒤 한미사이언스는 박 전 대표를 전무로 강등한다는 인사명령이 내렸다.
한미그룹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뭉친 3자 연합이 핵심 계열사를 장악하겠다는 시도로 판단하고 차단에 나선 것이다.
한미사이언스 권환 무시 못해…한미약품 장악 계획 돌입한 형제
대표 선임에 실패한 임종윤 이사는 이사회가 마무리된 뒤 임시주총을 소집해 박재현 대표 교체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한미사이언스는 3자 연합 요구로, 한미약품은 임종윤 이사의 요청으로 임시주총 소집을 각각 예고한 상황이다.
앞서 6월 임시주총을 개최한 한미약품은 이사회 선임안건 통과 후 임종윤 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이사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3자 연합에 힘이 상당부분 작동하는 한미약품에서 임종윤 이사의 대표 도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9월에 열린 한미약품 이사회는 임종윤 이사의 대표 선임이 부결했고, 한미약품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다만 임종윤 이사는 임시주총을 통해 박재현 대표 해임을 자신했다. 현재 한미약품의 최대주주는 한미사이언스로, 한미약품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의 해임은 주총 참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지분이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임종윤 이사는 자신이 대표로 선임되더라도 한미약품을 오랫동안 경영하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미사이언스가 지주사로 있는 한 계열사인 한미약품의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승기를 잡을 것이란 구상이다. 이후 임종윤 이사는 또 다시 이사회를 소집, 대표직을 노리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사이언스 장악 필요한 3자 연합…정관 개정 안건 상정할 듯
반면, 송영숙·임주현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으로 구성된 3자 연합은 7월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 9월말 정관변경 안건과 신규이사 3인 선임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9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형제 측 5인 대 3자 연합 측 4인으로 형제 측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3자 연합은 이사회 정원을 12인으로 늘리고,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 3인을 앉힐 방침이다.
문제는 현 경영진이 이사회를 개최해 임시주총 날짜를 잡아야 하지만 이미 경영권을 확보한 형제측이 3자 연합 제안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사회 개최 여부 확정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3자 연합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임시주총을 강행하는 방식으로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3자 연합 지분율은 48.19%로 29.07%인 형제 측을 월등히 앞서있지만 소액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판단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 양측 모두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상대가 제시한 임시주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주요 주주와 소액주주들을 설득하는 물밑작업이 더욱 치열해질 예정이다.
국민연금공단의 결정도 주목된다. 최근 국민연금은 한미약품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해 주주권 행사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6월말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 5.53%와 한미약품 지분 9.27%를 보유하고 있는데, 업계 내에서는 국민연금이 모녀 측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형제 측은 확실한 한미약품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예고했다. 한미약품과 관련된 행동주의펀드를 통해 표 대결에서 우의를 가져가겠다는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경영권 싸움이 진흙탕 양상을 보이며 주주가치를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측 모두 각각 소액주주와 면담을 진행하는 등 표심잡기에 행동을 보였으나, 그 이면에는 각자의 이권 차지에만 집착한 채 기업의 가치 상승 제고하기 위한 행동이 전무하다는 비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제약 산업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원외처방 1위를 기록 중인 한미약품그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 가슴이 아프다”며 “하루빨리 경영권 분쟁이 정리돼 회사에 안정이 찾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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