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전 라인업을 타고 트랙을 달리는 일.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꿈만 같은 일이다. 포르쉐는 만인의 꿈을 매년 현실로 옮겨 놓고 있다. 바로 ‘포르쉐 월드 로드쇼(Porsche World Road Show, 이하 PWRS)’다.
PWRS는 ‘포르쉐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Porsche Driving Experience)’의 일환으로 독일 본사에서 직접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포르쉐의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지금까지 세계 55개국의 6만2000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올해 역시 포르쉐는 막강한 군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용인 스피드웨이에 늘어선 포르쉐 군단은 적진을 향해 당장이라도 출격이 가능한 위풍당당한 편대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포르쉐는 특별한 잔치를 위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인스트럭터는 물론이고 25대의 라인업을 직접 독일에서 공수했다. 피트 한 켠에 산처럼 쌓여 있는 타이어 더미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암시하는 듯했다.
간단한 인사와 프로그램 소개를 마친 인스트럭터들은 참가자들을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피트레인에 도열해 있는 포르쉐 군단쪽으로 안내했다. 처음 체험한 프로그램은 핸들링 세션이다. 몸을 꽉 조이는 시트에 오르고 포르쉐 노트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신경계는 고장이라도 난 듯 아드레날린이 뿜어댔다.
먼저 신형 타이칸 터보를 몰고 서서히 서킷으로 나섰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고 가속페달을 밟자 타이칸은 감춰뒀던 발톱을 드러내며 아스팔트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884마력의 출력 탓에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박기 일쑤였다. 또 서킷 중간에 놓인 콘을 이리저리 피하기 위해 스티어링 휠을 돌리자 앞머리는 부드럽고 날카롭게 움직였다. 타이칸 터보는 강력한 힘으로 긴 레이아웃의 서킷을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했다. 짧은 트랙이 한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911 GT3 RS에 올라탔다. 911 GT3 RS는 생김새부터 달랐다. 포르쉐의 광기가 고스란히 담긴 모습이었다. 강력한 퍼포먼스를 짐작케 하는 911 GT3 RS의 외모는 단숨에 드림카 리스트를 수정하게 만들었다.
911 GT3 RS는 특유의 굉음을 내며 스피드웨이를 질주했다. 벼락같은 가속감은 물론이고 코너를 파고드는 능력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525마력의 최고출력은 경량화된 차체와 다운포스를 위한 파츠들과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긴 직선 코스를 달리다 코너 진입 직전 브레이크 페달을 밟자 흔들림 없이 속도를 줄였다. 마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코너를 돌아나갔다. 한동안 무난했던 삶에 묵직한 무언가가 던져진 느낌이었다.
911 GT3 RS는 트랙의 제왕이다. 이전 모델과 달리 액티브 에어로 다이내믹 요소와 커다란 리어 윙은 시속 200킬로미터(㎞)에서 409킬로그램(㎏)의 다운포스를 만든다. 이전 모델보다 두 배 높은 수준이다.
한바탕 서킷을 뛰어논 후 슬라럼 코스로 이동했다. 슬라럼 코스에는 718 스파이더 RS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델 역시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델이라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718 스파이더 RS는 창자처럼 꼬인 코스를 매끄럽고 빠르게 달렸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차체는 꽉 조인 서스펜션과 단단한 차체와 조화를 이루며 한 치의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운전자가 차를 조련하는 것이 아닌 차에 운전자가 조련당하는 느낌이었다.
인스터럭터는 잠시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다. 슬라럼 코스를 마치자마자 바로 브레이킹 코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터보와 함께 놀았다. 론치 컨트롤을 활성화해 벼락같이 가속하다 바로 부서져라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속도계 속 숫자는 법칙을 잊은 듯 순식간에 떨어졌다. 무더운 날씨와 계속되는 테스트에도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터보의 브레이크는 결코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포르쉐가 마련한 잔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포르쉐의 SUV 라인업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SUV와 트랙은 그다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하지만 포르쉐라면 다르다. 육중한 덩치의 카이엔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듯 날쌔게 움직였다.
특히 신형 마칸 일렉트릭의 감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연기관 심장을 드러내고 얹은 전기모터는 포르쉐 E-퍼포먼스의 방향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칸 터보 일렉트릭은 639마력의 힘으로 바퀴를 굴렸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밀어 넣자 0이었던 속도계 속 숫자는 3.3초 만에 100으로 변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코너링 성능이다. 높은 차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마칸 일렉트릭은 2밸브 댐퍼 기술과 에어 서스펜션, 리어 액슬 트랜스버스 록, 리어 액슬 스티어링을 포함한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시스템 덕분에 롤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트랙 풍경과 마칸 일렉트릭의 움직임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마침내 포르쉐가 준비한 잔치를 모두 끝났다. 귀신에 홀린 듯 움직인 탓에 생수를 들이키며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포르쉐의 광기는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그들은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익숙한 내연기관 포르쉐부터 새 시대를 알리는 전기차까지. 독일에서 건너온 포르쉐 군단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했다. 늦여름 뜨거웠던 아스팔트 위에서 뛰논 PWRS는 마치 포르쉐 마니아들을 위한 네버랜드 같았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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