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가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간호법’ 카드를 꺼내들면서 관련 입법이 현실화 일어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간 의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던 진료지원(PA) 간호사가 합법 영역으로 들어오는 등 의료체계에 큰 변화가 찾아올 예정으로, 전공의 공백을 간호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여부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여야가 이달 본회의 중 간호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세부 내용을 정리하기 위한 막바지 조율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발의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강선우·이수진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간호법안’ 등 총 4건이 올라와 있다.
여야는 8월 중 쟁점 없는 민생법을 우선 처리하자는 공감대를 형성, 올해 초 발생한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간호법 제정’을 결정했다.
특히 이번 국회에서 간호법 통과가 확실시되는 이유는 야당이 21대 국회에서 간호법 통과를 주도했다면, 22대 국회는 여당이 의·정 갈등 해결과 전공의 공백 해소를 위한 카드로 간호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질병을 동반한 유병장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 개선을 비롯해 숙련 간호사의 장기근속을 위한 체계적인 간호정책 수행, 간호서비스 질 제고, 국민건강 증진 이바지 등을 위해 간호법을 당론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선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 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치과·한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건강증진 활동의 기획과 수행 ▲간호조무사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로 규정했다.
단, 일정 요건을 갖춘 간호사는 검사·진단·치료·투약·처치 등에 대한 의사의 전문적 판단 이후 의사의 포괄적 지도나 위임에 따라 PA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간호사 출신 이수진 의원을 중심으로 간호법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 의원의 간호법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와 1인당 환자 수 축소를 위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시행의 원칙과 국가 책무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존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 개선, 지역공공의료와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간호정책, 간호인력 확보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노인·장애인 등에게 요구되는 간호·돌봄 제공체계를 담은 법안이었다.
대한민국 현행법 상 간호법은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하에 놓여있는데, 간호계는 이를 별도 간호법으로 재정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하고 적정수의 간호사 확보 및 처우 개선 등을 규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간호계는 2022년 간호법 재정을 위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 그간 의료계가 간호법 제정안에서 문제시한 ‘간호사 독자 의료활동’을 현행 의료법과 유사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변경하는 등 중재안까지 내놓으며 국회에 간호법 재정을 압박했다. 그러나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정부의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92%가 수련병원 복귀를 거부하면서 전공의 업무 상당수를 시범사업 형태로 떠맡고 있던 PA간호사의 제도권 진입 여부가 핵심 의제로 급부상했다.
PA간호사가 전공의들의 지원이 저조했던 비인기과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 수련병원 지원자는 심장혈관흉부외과 0명, 외과 5명, 소아청소년과 2명, 산부인과 3명, 응급의학과 2명에 불과했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13명, 정형외과는 10명, 안과는 7명이 지원했다.
실제 정부가 2월 말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현장에서 활동 중인 PA간호사 수는 1만 3000여명에 달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PA간호사는 숙련도에 따라 응급환자 약물 투여·수술 보조 등 의사의 일부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PA간호사를 지원하는 현행 시범사업은 권장사항이기 때문에 병원이 참여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간호계는 간호법이 최대한 빨리 통과시켜 간호사 보호·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사단체는 간호법 재정 반대를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1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만나 간호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당시 임 회장은 간호법이 국민 건강 우려와 의료인 간 업무범위 구분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회 내부에서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26일 전체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생악화로 인해 국회에서는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법안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문제와 간호법을 바라보는 여야의 조율되지 않은 입장차가 아직 존재해 간호법 통과를 완벽히 확신하기 이르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 내부에서는 간호법 통과에 대한 큰 이견은 없지만 세부 조율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가 관건인 상황”이라며 “만약 큰 문제가 없다면 이달 열릴 복지위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