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간 자동차 검사소의 70%는 배터리의 화재 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아직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검사소는 매년 전국 전기차 정기검사의 80%를 담당한다.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가 60만 대를 넘어서면서 전기차 안전검사 규모도 가파르게 늘고 있어 관련 인프라도 하루빨리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에 있는 민간 검사소 1892곳 중 ‘전기차 배터리 정밀 진단기(KIDAS)’를 보유한 곳은 574곳(3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KIDAS는 전기차 제조사로부터 배터리 정보를 제공받아 성능을 정밀 점검할 수 있는 장치다. 배터리 화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배터리 모듈 온도, 배터리 열화 상태(열에 의해 변질되는 정도), 배터리 셀 간 전압편차 등을 비롯해 누적 충전 및 방전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 소속 60개 검사소는 2022년 8월부터 모두 KIDAS를 도입했다.
이 기기가 없는 민간 검사소에서는 육안 검사나 배터리 고전압 전류가 차체로 흘러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절연 검사만 시행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밀진단기가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배터리의 상태를 진단한다고 하면 기존 검사는 청진기로만 검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민간 검사소는 전기차 정기 검사의 80% 이상을 맡고 있다. 전기차는 최초 등록을 마치고 4년 이후부터 2년마다 1차례씩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7월까지 정기 검사를 받은 전체 전기차는 13만6037대, 이 중 민간 검사소에서 11만1556대(82%)가 이뤄졌다.
민간 검사소에서 정밀 진단기 보유율이 낮은 건 정밀 검사가 의무화되지 않아서다. 교통안전공단 산하 검사소가 KIDAS를 도입한 것은 시범사업에 의해서였다. 민간 검사소 관계자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검사 장비를 갖춰야 할 필요가 없었다”며 “정밀 검사 장비가 150만 원 정도로 비싸지는 않지만 지방 영세 민간 검사소엔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토부도 정밀진단기를 활용한 배터리 검사를 의무화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에 나섰지만 시행은 빨라야 내년 말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시행규칙은 올해 4월 입법 예고된 이후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의 규제 심사를 받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조실 규제 심사가 통과되면 올해 하반기 공포 후 1년 뒤 시행을 추진 중”이라며 “민간에서 진단기를 갖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년 후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에 생산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정밀 검사라도 하루빨리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공공에서는 이미 2022년 8월부터 정밀 검사를 진행해 왔는데 아직 민간에 정착되지 못한 건 문제가 있다”며 “화재 예방을 위해 정밀 검사 장비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제도 공백 시기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새로 출시되는 전기차 배터리를 국가가 인증하는 ‘배터리 인증제’가 2025년 2월 시행되지만, 1년 동안은 기존대로 회사가 자체 검증할 수 있는 특례가 적용된다”며 “사실상 2026년부터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제조사와 협력해 배터리 성능을 점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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