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초격차(딥테크) 분야 집중 육성을 위해 ‘딥테크’ 특례상장 제도를 신설했지만, 시행 7개월이 지나도록 상장 ‘1호 사례’는 커녕 준비하는 업체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두사태’ 여파로 심사 과정에서 매출 요건을 깐깐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벤처캐피털(VC)업계는 분야 특성상 기술 완결성과 잠재성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초격차 기술인 ‘딥테크’ 특례상장이 본격화됐지만, 8월 현재도 실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에 대한 소식은 깜깜무소식이다.
딥테크 특례상장은 VC업계 숙원 사업 중 하나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등 국가전략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에 대해 충분한 시장 평가를 받았을 때 상장 기준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본격화됐다.
국가 육성이 필요한 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 중 시장에서 잠재력을 검증받은 기업에 대해 기존 복수 기술 평가에서 단수 기술평가를 허용하는 규정이 적용됐다. 시가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며, 벤처금융(VC) 등으로부터 최근 5년간 100억원 이상을 유치하면 딥테크 특례상장을 신청할 수 있다.
당시 VC업계는 “첨단 분야 회수시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모험투자시장 활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면서 “민간투자 확대를 이끌어낼 환경을 민·관이 구축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면서 환영의 뜻을 밝혔었다.
문제는 ‘파두사태’다. 파두사태는 반도체 설계기업 파두가 2022년에 기술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사건을 말한다. 파두는 상장 당시 연간 매출액을 1202억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상장 후 매출이 저조해 주가가 급락했다.
VC업계는 파두사태 이후에 상장 심사에서 기존 기술 특례상장과 마찬가지고 간접적으로 매출이 반영돼 딥테크 상장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 일부 업체가 딥테크 특례상장으로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기술 특례상장은 기업 기술력·성장성을 평가해 명시적으로 매출액을 반영하지 않지만, ‘판매처 확보 수준’ 등 일정 항목에 대해 간접적으로 매출액이 평가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특례상장 심사에서 딥테크 특성상 당장 매출보다는 기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VC업계에서는 현 상황이 지속할 경우 딥테크 특례상장이 연말이 지나도 ‘1호 사례’가 나오지 못할 것으로 관측한다. 딥테크 특례상장이 어려워지면서 코스닥을 중심으로 VC 활성화를 추진하려는 정부 정책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 VC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글로벌 투자시장에서 AI 기업이 이미 1등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전무하며, 여전히 매출을 기반으로 상장이 이뤄져 기술 경쟁력이 낮은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되고 있다”면서 “리스크 테이킹(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회나 도전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면서 이 시장을 육성해야 하는데 당장 매출에 의존하다 보니 전체 벤처투자 시장이 활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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