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황산니켈 진출로 배터리 소재 사업 확대
니켈·동 제련부터 전구체·동박 제조·폐배터리 자원화까지
‘올인원 니켈제련소’ 2026년 완공
국내 배터리 소재 공급망 구축 기여
세계 최고 유가금속 추출 기술→폐배터리 자원순환 사업
창립 50주년을 맞은 고려아연이 50년간 쌓은 독보적인 제련기술로 미래 전기차 시대에도 주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니켈과 동 제련에서부터 전구체와 동박 제조까지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는 이차전지(배터리) 밸류체인을 구축해 주요 소재 국산화에 기여한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축적한 폐기물과 폐배터리 등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자원순환 기술을 적극 활용해 배터리 밸류체인을 친환경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공헌한다는 취지다.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돼 일부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완성차업계뿐 아니라 전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으로 구성된다. 고려아연은 여기서 양극재와 음극재 소재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가장 먼저 진출한 배터리 소재 분야는 황산니켈이다. 2017년 자회사 켐코를 설립해 본격적인 진출을 알렸다. 황산니켈은 양극재 핵심 구성 요소인 전구체를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다. 삼원계 NCM배터리에서 N은 니켈을 말하는데 일반 니켈보다 순도가 높은 황산니켈을 사용한다.
고려아연이 황산니켈 소재 분야에 진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존 제련사업과 연계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확장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연간 150만 톤 규모 황산을 생산하고 있고 니켈 제련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며 “비철금속 생산 노하우를 살리면서 유망한 이차전지 소재 산업을 겨냥할 수 있는 신사업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황산니켈 분야 기술력과 잠재력은 검증을 받은 셈이다. 지난 2017년 11월 LG화학이 켐코 지분 일부를 취득하면서다. 켐코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했고 2019년에는 3000만 달러 수출탑을 확보한 데 이어 2020년 7000만 달러, 2021년 1억 달러, 2022년 2억 달러 수출탑을 달성했다. 2018년 생산을 본격화한 이후 매년 급성장을 이어갔다.
고려아연의 황산니켈 소재 분야 진출은 국내 공급망 안정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켐코가 양산을 시작한 2018년 우리나라는 황산니켈을 연간 약 2만 톤가량 수입했다. 하지만 불과 4년 만에 반대로 연간 4만 톤을 수출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켐코의 안정적인 생산능력 확대가 국내 무역 지형까지 변화시킨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켐코가 황산니켈 사업을 안정화시키면서 성장성과 잠재력을 입증한 후 고려아연은 전구체로 눈을 돌렸다. 전구체는 니켈을 주요 소재로 만들어진다. 양극재 재료비의 약 70%를 차지하는 배터리 핵심소재다. 하지만 국내 기업 대부분은 중국산 전구체를 주로 사용했다. 경제성 때문이다. 중국 전구체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황이다. 켐코도 사업 초기에 국내 고객사 확보가 어려워 해외 수출을 추진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8월 고려아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LG화학과 손잡고 한국전구체(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황산니켈을 생산하는 켐코가 지분 51%를 가져가고 합작 파트너사인 LG화학이 지분 49%를 보유하는 구조다. 켐코의 공장과 연계해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면 공정 효율화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고려아연의 ‘근본’인 제련사업의 확장성이 인상적이다. 기존 사업 노하우가 황산니켈 생산에 이어 전구체 생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공급망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고려아연은 소재 분야 국산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공급망(밸류체인) 핵심은 출발점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50년간 밸류체인에서 출발점이 갖는 위상을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로 성장과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업스트림이 단단해야 미드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취지다.
황산니켈부터 전구체, 양극재, 배터리, 전기차 등으로 이어지는 전기차 밸류체인의 출발점은 ‘니켈’이다. 켐코와 한국전구체를 설립한 이후 2023년 11월 고려아연과 켐코가 협력해 ‘올인원 니켈제련소’ 기공식을 진행한 배경이다.
그동안 니켈 제련업은 광산을 소유한 회사가 제련소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 회사들은 니켈 정광만을 원료로 사용했다. 반면 고려아연 올인원 니켈제련소는 니켈 정광부터 매트(Matte), 산화광의 니켈수산화물(MHP)까지 모든 니켈 함유 원료를 처리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올인원’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다. 고려아연이 50년간 쌓은 비철금속 제련기술이 집약된 시설로 조성될 전망이다. 특히 고려아연 올인원 니켈제련소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황산니켈뿐 아니라 황산코발트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만들어진다. 배터리 핵심소재 종합 생산 공장에 가까운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올인원 니켈제련소는 연산 4만2600톤을 목표로 오는 2026년 완공 예정이다.
고려아연이 주목하는 또 다른 배터리 소재 사업은 ‘동박(Copper Foil)’이다. 동박은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소재다. 음극집전체는 음극재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고려아연은 2020년 3월 자회사로 케이잼을 설립하면서 양극재와 음극재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알렸다.
고품질 동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진입장벽이 높아 전 세계적으로도 동박을 생산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만 생각해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시장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은 세계 최고의 전기분해 공정기술을 앞세워 동박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공정 과정에서 필요한 동과 구리, 황산 등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기존 사업 노하우도 영향을 미쳤다. 원가경쟁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이쯤 되면 고려아연 50년 역사 제련사업 노하우와 기술력이 미래 사업 전개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제련업체 중에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다변화하는 기업은 고려아연이 유일하다.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 영향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가 감소한 상황이지만 미래 방향성은 여전히 전기차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대중화에 진입하면 고려아연은 종합 배터리 소재 공급업체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소재 사업은 글로벌 유수 기업들이 낙점한 분야다. 고려아연의 경우 폐기물인 스크랩과 폐배터리, 폐수 등 공급망 마지막단계까지 신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넓게 보면 배터리 소재 사업 전체를 자원순환 사업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원순환 사업 역시 시작점은 고려아연 본업인 제련사업이라는 점이다.
반세기 동안 많은 기업들이 기피하는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온 업력이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신사업 기회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려아연은 과거부터 자원순환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제련 후 남은 부산물에서 유가금속을 추출해왔다. 부산물 대신 배터리에서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사업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 자원순환 사업인 셈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사실 자원순환 사업은 고려아연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며 “지난 1995년부터 제련 후 남은 부산물에서 유가금속을 추출해 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배터리 자원순환 사업도 비슷한 개념이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도 자원순환 노하우와 기술을 적용해 인류 과제인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하고 창립 50년을 넘어 100년 기업으로 나아간다는 방침이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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