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도 원시 시대에 태어나면 원시인일 뿐’이라는 격언은 인간 발달에서 환경의 결정적 역할을 함축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고, 서울 토박이가 서울 말씨를 쓰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닮아간다. 이런 ‘닮아감’의 과정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학습 메커니즘이자 생존 전략이다.
현대 사회에서 닮아감의 욕구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의 전반적인 부가 증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완성된 삶’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는 소비 패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완성된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미 유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런 ‘닮아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가능케 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더욱 친밀하게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이는 마샬 맥루한이 예견한 ‘지구촌’ 개념의 현실화다. 우리는 이제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완성된 삶의 모델들을 만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현재와 미래의 대세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인플루언서들은 단순한 유명인이 아니다. 그들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완성된 삶의 살아있는 모델이다. 그들의 일상, 취향, 소비 패턴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팔로워들에게 전달된다. 마치 원시 시대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숙련된 사냥꾼의 기술을 모방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강점은 ‘진정성’과 ‘접근성’에 있다. 전통적인 광고가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의 공유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상징하는 삶의 방식을 구매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경험, 문화, 그리고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나누는 ‘인문학적 소통’의 새로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현대인의 ‘효율성’ 추구 욕구도 충족시킨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인플루언서들은 이미 검증된 선택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한다. 이는 허버트 사이먼이 주장한 ‘제한된 합리성’ 이론과도 연결된다. 시간과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의 추천은 효율적인 의사결정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흐름이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과도한 모방은 개인의 고유성을 해칠 수 있으며, 인플루언서가 보여주는 삶이 항상 현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또한, 진정성 있는 콘텐츠와 상업적 광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앞으로도 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의 변화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문학적 소통’ 방식의 등장을 의미한다. 개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롤모델을 찾고, 그들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기업과 마케터들은 이 변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이 기업 브랜드의 본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개인들은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진정한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부상은 단순한 비즈니스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치를 공유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궁극적으로 ‘좋은 삶’을 정의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이 새로운 인문학적 소통의 시대에, 우리는 더욱 현명하고 비판적인 ‘영향받기’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재석 카페24 대표 jslee@cafe24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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