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시장 패권을 잡겠다며 진행한 기술개발 예비타당성 조사사업(이하 예타)이 또 다시 기획재정부 벽을 넘지 못했다. 범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산업 지원이 늦어지게 됐다.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신청한 4700억원 규모 ‘인체질환 극복 마이크로바이옴 기술개발사업’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마이크로바이옴 예타사업이 최근 미선정됐다는 결과를 받았다”면서 “사업 방향을 인체질환 중심으로 재편하고, 규모를 줄여 재신청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술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 6개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사업이다. 2022년 1조1505억원 규모로 조성했던 예타가 무산됐다. 당시에는 레드·화이트·그린바이오 등 모든 바이오가 포함돼 규모가 컸다. 6개 부처는 4700억원으로 사업 범위와 규모를 조정해 재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내 세균 전체를 뜻한다. 인체 내 유익균과 유해균 등으로 이뤄진 미생물 집합체로 화장품, 암, 자폐증, 난임, 장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치료제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 기능성 식품 개발 연구에서 벗어나 최근 치료제·메디푸드 분야로 연구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중이다.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제품 출시에 따른 시장의 급격한 확대가 전망된다.
실제로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J&J)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질병 치료제 개발에 한창이다. 화이자는 세컨드 지노믹스와 장내 세균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존슨앤드존슨은 베단타 바이오사이언시스와 장내 세균을 이용한 감염성 장염과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협약을 맺기도 했다.
정부는 세계시장 트렌드에 따라 개별 부처 차원 지원을 넘어 범부처 차원의 전략적 지원을 위해 2026년부터 2034년까지 총 9년동안 4731억7000만원(민자304억8000만원 포함)의 총 사업비 개요를 예타사업으로 제출했다.
기재부는 ‘핵심 공통 기반 확립 사업’ 방안에 담긴 국내 모든 연구진 공통 활용 가능한 서비스 제공 및 고도화, 미래 이슈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데이터 포털 및 분석 기술 개발’ 등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번째 고배를 마시면서 인체질환 연구개발 위주로 재편될 예정이다.
올해 남은 예비타당성 신청은 3·4차 두차례다. 다시 신청해도 예타사업 심사가 6개월 이상 걸리다 보니 연내 통과는 무산된 셈이다. 예타가 통과돼도 예산 확보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마이크로바이옴 지원 사업은 한동안 미뤄지게 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생산기술개발 사업이나 연구센터 사업 등이 사업 성격과 적합하지 않다는 기재부 지적에 따라 완전히 인체질환 쪽으로 집중해서 재조정할 계획”이라며 “다부처 사업이다 보니 조정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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