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이 법·제도라는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해 현행 방발기금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발기금 징수 기준을 조정하고, 사용처에 대한 투명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조세외 금전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부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하는 만큼 서둘러 공론화 불씨를 지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발기금, 미디어 환경 변화 따라가지 못해
방발기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콘텐츠 제작 지원이나 인력양성 등 방송 통신 발전 사업을 위해 방송 사업자에게 징수하는 법적 부담금이다. 1980년 공익자금으로 시작했다. 2010년 현재의 규격을 갖췄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케이블TV, 인터넷(IP)TV, 홈쇼핑 사업자 등은 방발기금을 직접 내고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기간통신사업자는 주파수 할당 대가를 통해 내고 있다. 2023년 기금 수입 예산은 1조4808억원이다.
다만 기금체계가 미디어 생태계에 맞춰 고쳐지지 않아 기금 부담 대상자 확대, 부담 대상자 부담 기준 설정, 기금의 관리 및 사용 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 기금 부담자인 레거시 방송사업자의 시장 영향력이 감소하는 가운데,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 포털, 글로벌 미디어 빅테크 등은 방발기금 부담 대상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기금과 같은 공공재원 기여에 제외돼 있다. 때문에 무임승차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기금 징수 기준이 이러한 경영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료방송사업자는 2017년, 홈쇼핑은 2011년 등 과거 징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기금 징수 기준이 현재 경영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희 경희대 교수는 “방송발전기금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의 기금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구조를 재편성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손봐야 하나…방발기금 개혁 방향은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사업자에 방발기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한국법제연구원에 해외 디지털세 동향과 국내 적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과제 수행을 요청했다.
글로벌 시장 사례를 참조해 볼 필요성도 제기된다. 유럽은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금 형성에 다양한 미디어 사업자 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은 역내뿐 아니라 역외 사업자에게 재정적 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미디어 빅테크를 감싸는 미국 반대가 장벽으로 작용한다. 본국의 법률을 적용받는 글로벌사업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국내법을 강제하는데 제약이 있다. 이에 따라 입법시 국내 사업자가 직접적인 법률 집행 대상이 될 수 있고 국내외 사업자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납부 사업자별로 다른 징수율로 인한 실질적 형평성 문제도 논쟁거리다. 방발기금 징수율은 방송사업자 수익규모 및 재정상태별로 달리 산정돼야 하나, 현행 제도는 유료방송사업자(SO, 위성, IPTV)의 시장 지위와는 무관하게 동일한 부과기준(방송서비스매출액)에 대해 동일한 징수율(1.5%)의 방발기금을 일괄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간 경영실적 차이가 극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징수율 적용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금 운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지출 문제도 불거진다. 방통위와 과기정통부가 소관하는 방발기금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기관인 국제방송교류재단, 언론중재위원회, 국악방송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기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발기금 사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다.
기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을 통합해야 한다는 방향성도 뚜렷하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020년, 2023년 두 차례의 ‘기금평가 결과’ 발표에서 정보·방송통신의 융·복합 가속화, 기금관리기관의 일원화 및 동일한 기금 수입원 등을 고려해 두 기금을 통합하고 성과평가에 기반한 지출구조조정 체계를 구축할 것을 권고했다.
◇방발기금 둘러싼 전방위 논란…“각개약진으론 한계…빅텐트 펴야”
방발기금은 쟁점 사안이 많을 뿐 아니라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중첩된 형태로 얽혀 있다. 자사 중심 사업자, 특정 사업자를 대변하는 국회, 관할 영역 중심의 정부 부처가 안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사업자들을 택일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부처 간 거버넌스 추진도 필요하다”며 “포괄 협의 기구를 구성하는 한편 미래 지향성 기금 제도를 투명하게 개방,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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