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들이 올해 실적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자동차 칩 수요가 당초 예상보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차량용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주가는 급락했다.
25일(현지시각)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칩 제조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자동차 칩 수요 하락 등으로 올해 매출 예측치를 기존 140억~150억달러에서 132억~137억달러(약 18조2900억~18조9800억원)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장 마르크 셰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최고경영자(CEO)는 “예상과 달리 고객 주문은 개선되지 않았고 자동차 부문 수요는 감소했다”며 “수요 부진이 점점 더 심화하고 있으며, 재고 조정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 1월까지만 해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연간 매출이 최대 169억달러(약 23조42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들어 두번째로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주가는 이날 13.7% 급락하며 4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세계 2위 자동차 칩 제조업체인 네덜란드 NXP 역시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23일 NXP는 자동차 칩 주문이 감소해 올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5% 감소한 32억3000만달러(약 4조4700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분기 기준 4년 만에 가장 부진한 실적으로, 특히 자동차 부문 매출이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NXP가 제시한 올 3분기 예상 매출은 31억5000만~33억5000만달러(약 4조3600억~4조6400억원)로, 시장 전망치 33억6000만달러(약 4조6500억원)를 밑도는 수치다. 커트 시버스 NXP CEO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거시경제 개선과 금리 인하를 기다리면서 칩 주문을 줄이고 있다”며 “고객사 재고 조정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돼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NXP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이날까지 사흘 간 12.7% 하락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면서 일부 자동차 칩 제조업체들은 수요 감소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선거 등 대외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올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연초 기대치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선 당초 올해 전기차 시장이 작년보다 20%대 중반 이상 성장할 것으로 봤으나, 현재로선 성장세가 20%대 초반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올해 들어 2026년까지 판매될 전기차 전망치를 작년보다 13.5%(670만대) 낮췄다.
올해 자동차 칩 업계의 수요 부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에 세계 1위 자동차 칩 제조업체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의 주가도 전날 하루 사이 6.4% 떨어졌고,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주가도 지난 5일 간 15.7%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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