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보건의료 난제를 극복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자 기획된 한국형 ‘ARPA-H’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다.
암, 알츠하이머 등 인류가 풀지 못한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치료를 넘어선 효과적인 예방 단계까지 이끌어내기 위한 이번 범정부 프로젝트가 추후 어떤 성과를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6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티타워에서 ‘KARPA-H 프로젝트 추진단 개소식’을 개최하고 사업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이날 양 기관은 올해 신규로 추진하는 한국형 ARPA-H의 첫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과제를 공고했다.
차순도 진흥원장은 “최근 전 세계가 코로나19 펜데믹 사태를 겪으며 보건 문제가 국가 경제·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향후 이를 대응하기 위해 보다 혁신적이고 신속한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는 한국형 ARPA-H 추진단을 구성해 리더십을 갖춘 프로젝트매니저(PM)을 모집하기 시작했다”며 “향후 추진단 수행 프로젝트가 국가 난제에 도전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도록 격려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ARPA-H(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for Health)는 미국 DARPA를 벤치마킹해 보건의료 분야 첨단기술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지난해 3월 NIH(미국 국립위생연구소) 산하에 신설된 기관이다.
여기서 ‘DARPA(국방부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인터넷, GPS, WWW, mRNA 등 인류 역사에 중대한 기술 발전을 안긴 첨단기술혁신을 주도한 미국 국방성 산하 혁신연구 지원기관이다.
미국 정부는 2022년 한해 ARPA-H에 10억달러(1조3000억원)가 투입, 올해에는 15억달러(2조원)를 투자했으며, 내년에는 25억달러(3조2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ARPA-H 취지는 국민 건강과 삶의 질 영향에 미치는 암, 감염병,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질병의 예방과 진단·치료를 위해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혁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함으로, 불확실성과 실패 확률이 높지만 성공할 경우 파급효과가 큰 ‘고위험-고보상’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정부 12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해 한국형 ARPA-H 추진을 결정했다. 2023년 8월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확정했으며, 2024년부터 2032년까지 9년간 1조1628억원의 총사업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는 ▲백신·치료제 주권 확보 ▲암·희귀·난치질환 등 미정복질환 극복 ▲바이오헬스 산업 초격차 기술 확보 ▲초고령사회대응·지속가능한 복지·돌봄체계 구축 ▲필수의료 혁신 등 5대 임무를 수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5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5대 임무 중 보건안보, 복지·돌봄 임무를 수행할 프로젝트 관리자(PM) 2명을 우선 채용하고, 각 PM 주도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총 3개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선경 한국형ARPA-H추진단장은 “추진단의 첫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각 임무의 PM께서 짧은 시간 동안 도전적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부 과제를 기획하느라 불철주야 노력했다”며 추진단은 PM을 중심으로 기민한(Agile)한 조직 구조 및 연구 현장 중심의 지원을 통해 목표 달성을 이루고자 하니,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형 ARPA-H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백신 초장기 비축 기술 개발 ▲백신 탈집중화 생산시스템 구축 ▲근감소증 멀티모달(Multi-modal) 치료 기술 개발 등이다.
우선 백신 초장기 비축 기술개발 프로젝트는 현재 3년 수준인 백신 보관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신은 보관기간이 제한적이고 언제 어떤 전염병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어 사용 시기가 불확실하다.
따라서 현재는 미사용 백신의 생산과 폐기를 반복하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백신 보관기간을 수십 년 이상으로 연장한다면 국가 백신 수급·비축 전략과 백신 생산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백신 탈집중화 생산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소규모·이동형 백신 생산모듈을 개발·보급해, 백신을 필요한 지역에서 빠르게 개별 생산·공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소규모·이동형 백신 생산기술은 최근 글로벌 선도 기업이 연구를 추진하고 있어 2~3년 내 초기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며, 국가 백신주권 강화의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근감소증 멀티모달 치료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노화성 근감소증의 근본적 치료를 위해 근육량 및 근 기능의 복합적 향상이 가능한 치료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근육량 증가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기존의 치료제 개발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근육의 양적·질적 기능을 동시에 향상하고자 한다.
근감소증은 노인에서 전신 쇠약, 독립적 생활의 제한, 각종 질환의 발생을 증가시켜 건강수명 단축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므로 초고령사회 대응 방안으로서 치료제와 비약물 치료 등 멀티 모달(물질전달)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
프로젝트별 연구개발과제 공고는 7월 26일부터 8월 26일까지 30일간 진행되며, 9월 중 연구기관을 선정하고 개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3개 프로젝트에 5년간 총 55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는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의 바이오헬스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첫 단추이며 혁신은 창의적이고 역량 있는 연구자분들의 참여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라며 “사장되는 연구가 아니라 변화를 가져오는 연구,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