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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앱’ 그랩, 車부터 금융까지 동남아 장악 비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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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그랩(Grab)은 필수입니다. 화면이 보기 간편하고 이용하기 쉬워 누구나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됐죠”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공유 애플리케이션(앱) 그랩의 운전기사로 말레이시아에서 5년간 일했다는 아자드(Azad) 씨는 택시 이용부터 음식배달, 결제까지 동남아 일상생활 속 깊이 파고든 그랩의 편의성을 설명하며 “동남아 최고의 앱이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랩을 이용하는 모습.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랩을 이용하는 모습. / 이성은 기자

2012년 그랩(당시 ‘마이 택시’)의 등장 이후 현재 말레이시아 내 20개 이상 비슷한 승차공유 앱이 생겨났지만 말레이시아인들과 관광객 대부분이 그랩만 이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생활 필수 앱으로 자리잡은 그랩의 영역이 ‘슈퍼앱’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랩 차량 외에도 음식배달 오토바이, 상점 등에 붙은 그랩 로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성공 비결은 ‘현지화’

그랩의 동남아 시장 성공 비결은 ‘현지화’가 꼽힌다. 일반 차량의 승차공유 외에도 동남아 시장 특성을 살린 오토바이, 현금 결제 등으로 미국 우버(Uber)를 집어삼켰다.

그랩의 태생은 말레이시아다.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이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앤서니 탄(Anthony Tan)이 창업했다.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친구가 현지 택시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게 계기였다.

첫 시작은 콜택시 앱 ‘마이 택시(My Teksi)’였다. 마이 택시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장 확장과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앱 출시 1년 뒤인 2013년부터 동남아 시장 확장에 뛰어들었다. 2013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넓혔다. 말레이시아가 아닌 국가에선 ‘그랩 택시’(Grab Taxi)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됐다. 이후 2016년 현재의 그랩으로 명칭을 통합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랩 드라이버 센터에서 운전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랩 차량 렌탈 등 운전자 지원이 이뤄진다.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랩 드라이버 센터에서 운전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랩 차량 렌탈 등 운전자 지원이 이뤄진다. / 이성은 기자

그 사이 우버라는 대형 경쟁사가 등장했다. 그랩이 2013년 필리핀으로 사업을 확장할 당시 우버 역시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우버는 동남아 시장 진출 5년만인 2018년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 매각하기로 했다.

우버의 가장 큰 패착의 원인으로는 현지에 어울리지 않은 카드 결제가 꼽힌다. 우버는 당시 신용카드 결제율이 낮은 동남아 시장에서 현금 대신 카드 결제 서비스를 선보였다. 반면, 그랩은 현금 결제가 보편화된 동남아 시장에서 현금 결제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우버는 베트남에서 우버 보다 앞서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발빠른 현지화로 동남아 시장을 선점했다.

어느 차량이든 활용 가능해 공급도 시장 선점

일각에서는 양사 경쟁 당시 그랩의 앱 인터페이스 등 사용성은 우버 보다 불편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그랩은 공급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그랩을 직접 사용해 보니 현재 앱의 인터페이스 등 사용성은 국내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택시호출 앱과 가장 큰 차이는 자가용, 렌터카 등 어느 차량이든 그랩 차량으로 활용할 수 있단 점이었다. 현지화를 통한 시장 점유 외에도 공급 측면에서 선점할 수 있던 비결로 보였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 첫 서비스 당시 운전기사가 40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2018년 3월 기준 동남아 지역에서 260만명까지 늘렸다. 2019년 기준 말레이시아에서만 25만8000여명이 그랩 운전기사로 등록됐다. 현재 그랩은 동남아 8개국 700개 이상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그랩 운전기사가 늘자 공급이 원활해지며 소비자들은 더욱 편해졌다. 빠른 배차로 편의성을 높여 소비자들이 더욱 많이 이용하게 되는 선순환이 구축됐다. 특히 차량 호출 시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 등에서도 운전기사가 배정되는 시간이 한국 보다 짧았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랩 운전기사 아자드(Azad) 씨가 그랩을 운행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랩 운전기사 아자드(Azad) 씨가 그랩을 운행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그랩 앱을 실행시키고 차량을 호출하기 위해선 단 두 번의 스마트폰 터치만으로 가능했다. 출발·목적지 확인 후 ‘저스트 그랩’(Just Grab)으로 호출하자 30초 전후로 차량이 배정됐다. 배정 이후 1분 이내 운전기사로부터 “가는 중이다”는 메시지가 왔다.

저스트 그랩은 자가용 등을 활용한 일반 운전기사든 택시 차량이든 관계 없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차량을 배정하는 서비스다. 이외 요금이 더 비싼 ▲그랩 카 플러스(Grab Car Plus) ▲그랩 택시(Grab Taxi) ▲그랩 카 6시터(Grab Car 6-Seater) 등 이용 목적이나 고급 서비스 선호 등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이동 거리는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 인근 호텔에서 관광 명소로 알려진 쿠알라룸푸르 시내 ‘부킷 빈탕’ 거리까지였다. 요금은 74링키트(2만1000원)였다. 톨게이트 요금소를 3차례가량 지나면서 운전기사가 낸 요금은 따로 더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출발지부터 예상 요금이 아닌 확정 요금을 제공해 도착 후에도 실제 운행 거리에 대한 요금 변동이 없어 신뢰할 수 있었다. 오후 11시 넘어 돌아가는 길에도 1분 이내 차량이 배정돼 늦은 밤 차량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졌다.

그랩은 말레이시아 운전기사에게 생계를, 소비자에게 생활을 제공하고 있었다. 특히 자가용, 렌터카, 일반 택시 등으로 누구나 운전기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공급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보였다. 이는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승합차 대여와 승합차 운전자까지 알선하는 개념의 ‘승합차 임차’ 서비스가 가로막힌 국내와 상반된 모습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랩 드라이버 센터 방문객들이 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랩 드라이버 센터 방문객들이 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 이성은 기자

그랩 차량들은 앞유리에 ‘E-핸들링’(E-Handling) 스티커를 부착했다. E-핸들링은 공유차량 운전기사 자격을 뜻한다. 번호판은 일반 택시 등에 장착된 흰 바탕색의 영업용이 아닌 검은색 바탕의 자가용 번호판이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랩 운전기사 웡(Wong) 씨는 “휴일 없이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며 매달 8000~9000링키트(235만~264만원)를 번다”며 “자가용이 없더라도 PSV(Public Service Vehicle, 대중교통서비스 운행권)만 취득하면 렌터카로도 그랩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고 했다.

PSV는 유료 승객을 운송하는 운전기사를 위한 자격 면허다.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말레이시아인이라면 누구나 건강검진, 6시간의 교육을 받은 뒤 취득할 수 있다. PSV 소지자는 일반 택시, 렌터카 운전기사, 공유차량 운전기사 등을 모두 운행할 수 있다. 그만큼 그랩 운전기사 문턱이 낮아 공급을 늘릴 수 있었던 셈이다.

이마저도 2019년 10월부터 시행된 일종의 규제다. 정책 시행 초기 말레이시아 정부가 PSV 소지자 단속에 나서며 그랩 운전기사들이 이탈해 차량 호출 후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 난항을 겪었지만 현재는 정책이 자리 잡았다.

車부터 배달·금융·AI까지 사업 확장

말레이시아 일상 필수 앱으로 자리잡은 그랩은 차량 호출 외에도 음식 배달, 모바일 결제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쿠알라룸푸르 시내에는 오토바이를 탄 음식배달원들이 그랩이라는 로고가 적힌 배달통을 오토바이에 매단 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랩 이외 다른 로고는 찾기 힘들었다. 쇼핑몰 앞 발렛 주차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써진 알림판에는 ‘그랩 페이’(Grab Pay) 로고가 자리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 쇼핑몰 앞에 그랩 배달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 쇼핑몰 앞에 그랩 배달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그랩은 현재 공유 차량, 결제 서비스 외에도 음식 배달, 마트 주문 배달, 소포 배달, 호텔 예약, 사업자 대출, 그랩 운전자·탑승자·여행 보험 등 배달부터 금융 분야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은 올해 5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손잡고 AI 기능을 활용한 사업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그랩은 이용자를 위한 고급 AI 솔루션 개발하고 직원들이 챗GPT를 업무에 활용해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2022년부터 카카오T를 통해 해외에서도 차량을 호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해외 진출을 확장 중이다. 현재 유럽, 아시아, 동남아, 미국, 중동 등 37개국에서 해당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랩 앱 설치 없이 카카오T로 차량을 호출하면 그랩과 연동돼 그랩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기존 카카오T를 이용하던 국내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한계가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카카오T를 이용해 그랩을 호출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카카오T를 이용해 그랩을 호출하고 있다. / 이성은 기자

이에 카카오모빌리티는 올해 6월 외국인 전용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케이라이드’(K Ride)를 출시했다. 케이라이드는 전 세계인이 어느 국가를 방문해도 앱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할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 14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며 연내 30여개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쿠알라룸푸르=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

IT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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