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메타버스 열풍이 식으면서 국내외 메타버스 플랫폼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공 메타버스다. 수십억원의 세금이 투입됐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가상의 유령도시가 됐다. 메타버스라는 인기 키워드만 생각한 보여주기식 행정이 혈세 낭비로 이어진 모양새다.
3년간 전국 지자체 메타버스 예산 1064억원
송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메타버스 사업 예산 및 사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메타버스 사업을 위해 총 1064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집행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세계 최초의 공공 메타버스 플랫폼 ‘메타버스 서울’에 2022년과 2023년 각각 20억원씩 40억원의 세금을 사용했다. 메타버스 수도를 노리는 경상북도의 메타버스 플랫폼 ‘메타포트’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총사업비 30억원이 투입된다.
문제는 성과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공공 메타버스 구축 및 운영에 사용됐는데 남은 건 없다.
울산시의 ‘울산안전체험 메타버스’, 경상남도의 메타버스 사업 ‘범죄예방 아일랜드’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 메타버스는 월평균 이용자 수가 100명 단위밖에 되지 않는다. 100명~500명 내외에 불과하다. 메타버스 서울은 일평균 500명쯤이 접속했다. 이는 전체 서울 인구 938만명 대비 0.05%만 이용한 셈이다.
이벤트성으로 만들어진 공공 메타버스가 버려지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한적십자사를 상대로 SK텔레콤 ‘이프랜드’에서 2022년 헌혈자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혈세 4300만원을 들였다고 지적했다. 헌혈자의 날 단 하루를 위해 혈세를 투입해 메타버스를 만들고 폐기했다는 이유다. 지역축제 등 행정 홍보를 위해 수백만원 이상 혈세를 투입한 공공 메타버스는 꾸준히 방치됐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 전략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보여주기식 행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메타버스, 웹3, AI같이 최근 산업계 전반의 화두가 된 핵심 기술 키워드를 행정과 결합해 구색만 맞추다 보니 세금은 세금대로 쓰고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특히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영향이 커 이용자가 자신의 캐릭터로 접속해 치장용 아바타 아이템을 직접 꾸미고 가상공간에 접속하는 느낌의 선입견이 형성됐다. 공공 메타버스만 봐도 대부분 그렇다.
네이버 제페토, 젭, SK텔레콤 이프랜드도 같은 구조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로블록스도 방식은 비슷하다. 어딘가에 접속해서 내 캐릭터를 움직여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한다. 메타버스의 정의가 마땅히 없었고 ‘레디 플레이어 원’으로 인한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메타버스 및 웹3 업계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메타버스의 범위, 웹3의 정의를 넓게 보고 만들었다면 공공 메타버스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봤다.
꼭 아바타를 생성해서 어딘가에 접속하고 시장실에 방문해 시장 NPC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건 메타버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정부24나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이면 하는 행정 서비스를 굳이 어딘가 접속해 움직여서 하는 건 이용자 경험(UX)만 번거롭게 하는 셈이다.
메타버스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울시에 들어온 민원을 오세훈 시장이 직접 메타버스 서울 같은 플랫폼에서 라이브 방송을 켜고 직접 답변을 해주는 식의 서비스가 나왔을 것 같다”며 “메타버스도 그렇고 웹3도 갖다붙이고 싶었다면 이용자가 직접 생태계에 참여하고 권리와 보상을 얻는 구조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단되는 공공 메타버스
결국 1000억원쯤의 혈세가 공공 메타버스 공간 구축에 사용되고 사라지는 꼴이 됐다. 메타버스 산업 자체도 최근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에 관심을 빼앗겼다. 메타버스는 마땅한 정의도 없이 산업이 태동하다 보니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메타버스 사업을 한다는 많은 이가 서로 다르게 답변할 정도다.
이는 국회와 시도의회 등으로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배경이다. 실제 메타버스 수도를 노리는 경상북도의 메타버스는 지난해 말 경북도의회로부터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메타버스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사업 실체를 알기 어려워 정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성공 사례는 부족한데 방치·폐기 등 실패 사례만 늘어나자 공공 메타버스 플랫폼 구축이나 운영을 중단하는 곳도 나왔다. 이미 공공 메타버스 실패 사례가 누적된 가운데 굳이 혈세를 들여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셈이다.
결국 메타버스 서울의 서비스 중단, 중소벤처기업부와 성남시의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등 7월에만 3곳의 서로 다른 공공 메타버스 플랫폼 관련 소식이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개발하려던 메타버스 플랫폼은 ‘K스타버스’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8월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K스타버스는 스타트업, 벤처투자사(VC), 공공기관 등이 가상공간에서 투자 유치 및 지원사업 신청을 할 수 있게 한다.
성남시 메타버스 플랫폼은 2022년 9월 성남시가 메타버스 특별시 도약을 계획하면서 함께 발표됐다. 성남시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해 신개념 공공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성남시 메타버스 플랫폼은 플랫폼 기획 의도에 담긴 설명만 봐도 메타버스 서울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 예상된다. 웹사이트 등 홈페이지에서 이미 할 수 있는 걸 굳이 메타버스라고 구현해 봐야 아무도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다.
메타버스 업계 관계자는 “공공 메타버스가 잘되건 말건 기업에 직접 영향에 오진 않지만 실패 사례만 자꾸 누적되면서 이용자가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간접 영향이 크다”며 “공공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민간 메타버스도 이용하는데 메타버스는 실체가 없는 돈 낭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생겨버리면 이용자 모객이 점점 더 힘들어져 사업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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