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대만 TSMC와 세계 1위 패키징·테스트 전문 기업 대만 ASE에 인공지능(AI) 반도체 패키징 물량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만과 해외에 신규 공장을 세워 늘어나는 수요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패키징 회사들이 기술 확보와 시설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대만 남부에 첨단 패키징(CoWoS) 생산시설 증설을 위한 부지를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oWoS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연결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패키징 공정이다.
ASE는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에 두 번째 테스트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ASE는 멕시코 토날라에도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 AI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중요… TSMC, ASE 등 대만 기업 집중 수혜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생산 비용이 증가하면서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한계에 이르자, 여러 개의 반도체를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페어필드에 따르면,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을 이어가 오는 2030년 90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첨단 반도체 패키징 수요에 따른 수혜는 TSMC와 ASE 등 대만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 등 AI 가속기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TSMC는 수주 물량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CoWoS 패키징 생산 능력을 전년 대비 2배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TSMC는 최근 대만 남서부에 2곳의 패키징 공장 신설 계획을 밝혔다. 제1 패키징 공장 건설 현장에서 유적지가 발굴돼 공사가 중단됐지만, 신규 부지를 곧바로 물색해 기존 시설투자 계획을 이어갈 방침이다. TSMC는 내년에도 CoWos 관련 시설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 퀄컴, 인텔, AMD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ASE도 주문량 증가에 시설투자를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ASE는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 시장 점유율 1위(27.6%) 기업이다. ASE는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ASE는 일본에 신규 공장 부지를 신설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톈 우 최고경영자(CEO)는 “일본에서 신규 부지와 확실한 반도체 생태계를 갖춘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 韓 패키징 업체들 추격 속도내지만… “TSMC 중심 생태계 굳건”
삼성전자도 패키징 관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신설하는 반도체 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170억달러에서 400억달러(약 56조원)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첨단 패키징 관련 연구개발(R&D) 센터와 설비도 구축할 계획이다. 연간 2조원 이상을 패키징 라인 확충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패키징과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하나마이크론과 네패스 등 국내 후공정(OSAT) 기업들도 AI 반도체 패키징 수주를 위한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1위 OSAT 기업인 하나마이크론은 AI 반도체 패키징에 적용되는 2.5D 패키징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2.5D 패키징은 여러 개의 반도체를 수평으로 붙여서 단일 패키지에 통합하는 기술이다. 네패스도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서로 다른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구현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 ‘패키지온패키지(POP)’를 개발 중이다.
국내 업체들의 노력에도 대만 기업들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초 CoWoS를 상용화는 등 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대만 기업들과 달리 국내 패키징 업체들은 관련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OSAT 업계 세계 시장 점유율은 6%(2023년 기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TSMC와 ASE 등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협력해 왔고, TSMC가 AI 반도체 생산을 대거 수주하며 대만 패키징 생태계가 수혜를 입고 있다”면서 “국내 패키징 업계는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단숨에 격차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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