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격전지로 부상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양강 구도를 깨고 가세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HBM 시장 후발주자지만 업계의 예상을 깨고 올 2분기부터 최대 고객사인 미국 엔비디아에 소량 공급을 시작하면서 3파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5세대 HBM 제품인 HBM3E을 제조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초반 승기는 SK하이닉스가 잡았다. 수율과 공급량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으며, 올 2분기 양산을 본격화한 HBM3E 공급량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는 3개사 중 가장 먼저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품질점검)를 통과, 주 공급사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3E 수율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영업이익률 또한 D램의 2배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 역시 단기간에 HBM3E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측에서는 SK하이닉스에 지속적으로 공급량 확대를 요구하며 압력을 넣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HBM3E 뿐만 아니라 기존 HBM3(4세대 HBM)도 생산하고 있어 가용 생산능력이 사실상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의 경우 엔비디아에 공급을 시작했지만, 아직 수율 등의 문제로 소량 공급에 그치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회계연도 3분기(3월~5월)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의 세부 실적 내용을 살펴보면 이 회사는 3개월간 1억달러 규모의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했다. HBM3E 제품 단가를 감안하면 대규모 공급이 이뤄졌다고 보기에 어려운 수준이다.
마이크론은 수율 또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론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HBM 사업 영업이익률이 D램에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HBM이 D램 가격의 2~3배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점에 감안하면 HBM 사업에서 아직 제대로 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자신 있게 HBM3E 대량 양산 및 공급을 언급한 시기가 내년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연내 HBM3E 공급 물량을 크게 늘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 공급만으론 충분하지 않기에 삼성전자 HBM3E의 품질 인증을 앞당기고 물량을 받아야만 인공지능(AI) 가속기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36기가바이트(GB) 용량의 HBM3E(HBM 5세대) 12단(H) 제품이 아직 엔비디아 퀄 테스트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퀄 테스트는 해당 제품의 품질이 납품 가능한 수준인지 성능을 시험하는 단계를 말한다. 퀄 테스트를 통과한 후 본계약 절차를 밟게 된다. HBM 품질 인증은 한 번에 1000시간 이상의 테스트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출 수 있느냐다. 삼성전자의 HBM3E 제품은 업계 최초로 12단 구조를 구현한 제품이지만, 전력 대비 성능 문제에서 아직 엔비디아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에 HBM3E 설계 일부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설계·공정 인력을 총투입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로부터 승인을 받는다면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HBM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다. 구체적인 공급 일정은 이달 말 예정된 삼성전자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모간스탠리는 “삼성전자의 HBM3E 12단이 엔비디아로부터 품질 승인을 받는다면 주가 재평가에 확실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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