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동력부터 첨단무장까지
극한상황서도 안정적 제어 가능한
全전기시스템 연구과제 완료
‘꿈의 이지스함’ 국산화가 현실로…
땅 위에 전기자동차가 흔해진 시대라면 바다에 전기선박이 떠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추세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아주 획기적인 일이다. 왜 그럴까.
우선 자동차와 배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 고층빌딩만 한 대형선박은 체급부터 자동차와 너무 다르다. 무게로만 따져도 최소 수천 배에서 수만 배까지 차이가 난다. 요즘 유행어로 ‘넘사벽’이다.
또 자동차는 도로 위를 100% 떠 있는 상태로 달리지만 배는 물속에 상당 부분 가라앉은 채 움직인다. 잠수함은 아예 물속으로 다닌다. 육중한 덩치가 물의 저항을 뚫고 다니는데 필요한 에너지 소모량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동력을 전기만으로 감당한다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다.
더 확실한 차이점. 자동차는 연료가 부족해지면 가까운 주유소나 충전소를 찾아 보충하면 된다. 아쉽게도 바다 위에는 주유소도 충전소도 없다. 망망대해를 몇 달씩 돌아다녀야 하는 선박에 연료가 떨어지면 부주의한 자동차 운전자보다 훨씬 난감해질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쉽게 떠올릴만한 상식인데, 만약 그 배가 전투를 수행하는 함정이라면 한 차원 더 복잡해진다. 군함의 목표는 싸움 자체가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이기려면 적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탐지 능력, 기동성, 화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물론이고 극한상황을 견디며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고난도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추진동력부터 무기체계까지 모든 장치를 전기로 구동하는 함정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그런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낼 획기적 신개념 군함이 바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이다.
온 국민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할 KDDX는 안타깝게도 설계과정의 군사기밀누출 사태로 인해 태어나기도 전에 오명과 잡음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바로 KDDX의 진가를 보여줄 핵심 콘텐츠다.
KDDX는 여러 의미에서 한국 해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전략자산이다. 기존의 한국형 구축함(KDX) 기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우리 기술로 건조되는 순 국산 이지스함이자 전전기함정(全電氣·All Electric Ship)이다. 말 그대로 완전히 전기로만 움직이는 우리 구축함의 효시가 된다는 의미다.
전전기 체계를 갖춘 대형 수상함은 세계적으로도 영국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와 미국의 차세대 구축함 줌왈트 등 극소수뿐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전전기 함정은 상황에 따라 고속기동과 함께 고출력 전자 장비를 빈번하게 사용해야 해서 엄청난 전력부하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중요한 순간에 과부하로 인해 성능이 저하되거나 정전 같은 먹통 사고라도 난다면 어찌될까. 물어보나 마나 그냥 재앙이다.
따라서 안정적 전력제어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전전기함정은 그림의 떡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2020년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의 ‘함정 통합전력시스템 제어 및 해석기술’ 과제를 수주해 올해 5월에 이를 완수해냈다. 이 연구결과는 향후 전전기함정 국산화를 완성하게 될 기반이다.
사실 한화오션의 전전기 기술 자체는 3000톤급 잠수함(장보고-III) 설계 및 건조과정에서 이미 적용된 바 있다. 잠수함은 태생적으로 은밀성이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수상함보다 먼저 국산화를 달성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 7000톤급 KDDX에 적용될 기술 과제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것이다.
함 내 탑재된 대용량 발전기를 활용해 가동되는 전전기체계는 민감한 전자 장비와 추진 전동기를 정밀하게 제어하게 된다. 함정의 작전 수행 능력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고 디젤 함정에 비해 소음과 진동을 줄여 적의 탐지를 피하는 스텔스 기능도 대폭 향상된다. 여기에 화석연료의 오염물질을 감소시키는 친환경 요소는 덤이다.
KDDX를 대표하는 또 다른 핵심기술은 통합마스트다. ‘신의 방패’라는 이지스(Aegis) 명칭에 걸맞게 센서, 레이더 등 함정의 감각기관을 하나로 통합한 장치다. 적의 동향을 상시로 파악하는 데 소요되는 전력도 엄청나다. 전전기체계는 이런 최첨단 전자기 무장의 안정성과 정숙성을 유지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할 수 있다.
KDDX는 한마디로 ‘꿈의 구축함’이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은 꿈같은 기능들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역량이다. 한국 해군 전력의 미래를 좌우할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기준도 역시 사업수행 능력이다. 혹시라도 그 이외의 다른 이유나 핑계를 섞으려는 불순한 시도가 있다면 마땅히 좌절되어야 한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