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잇달아 대만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우고 있다.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와 GPU(그래픽처리장치)와 CPU(중앙처리장치) 분야 세계 2위 AMD, 메모리 3위 마이크론 등에 이어 글로벌 1위 자동차 반도체 업체인 독일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도 대만에 R&D센터를 짓는다. 대만은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공급망 확보에 유리한 데다 대만 정부가 투자금의 최대 50%를 지원하고 나선 결과다.
인피니언은 17일(현지시각) 대만에 12억대만달러(약 510억원) 규모의 R&D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피니언은 이곳에서 현지 파트너와 협력해 전기 자동차용 블루투스칩을 비롯한 차세대 와이파이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인피니언은 현재 대만 TSMC에서 고급 자동차칩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 인피니언의 이번 투자로 대만 내 자동차 전자제품의 생산 가치는 600억대만달러(약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인피니언은 대만 R&D 기지 조성 배경으로 강력한 산업 클러스터와 고도로 숙련된 R&D 인재가 갖춰진 점을 꼽았다. 인피니언 측은 “우리는 대만의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여러 대만 기업과의 기존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R&D 활동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만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도 큰 역할을 했다. 대만 정부는 4억8000만달러(약 200억원)를 부담하기로 했다.
엔비디아도 243억대만달러(약 1조원)를 투자해 대만에 세계 첫 인공지능(AI) R&D센터를 짓고 있으며, 두번째 R&D센터 설립을 고려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대만에 방문해 “향후 5년 내 대만에 R&D·디자인센터를 건립해 최소 1000여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하겠다”며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또 엔비디아는 대만에 초고성능 컴퓨터(HPC) 시스템을 구축하고, HPC 연산 능력을 대만의 생성형 AI와 거대언어모델(LLM), 디지털 복제 등 미래 기술 연구 개발에 제공할 예정이다. 대만 정부는 67억대만달러(약 2800억원)를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AMD 역시 대만에 50억대만달러(약 2100억원)를 투입해 R&D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대만 정부는 AMD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해외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R&D 인력의 20%를 대만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채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대만 정부로부터 47억2200만대만달러(약 1900억원)를 지원받은 마이크론은 현지 R&D센터를 확장하고 있다. 또 반도체 장비 1위 기업 네덜란드 장비업체 AMSL도 대만 R&D센터를 오는 7월 착공할 계획이다. 투자액은 9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하며, 대만 정부는 지원금에 더해 R&D 비용과 설비투자 세액 공제 등을 제공한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저마다 대만에 R&D센터 설립에 나선 이유는 반도체 제조부터 설계, 테스트 및 패키징 등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 지리적으로도 아시아 주요 반도체 시장인 중국과 일본, 한국 등과 가까워 공급망 관리에 유리하다. 여기에 대만 정부는 2020년부터 국내외 테크 기업의 대만 투자를 유도하는 ‘A+ 산업혁신 R&D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만을 글로벌 반도체·AI 허브로 키우기 위해 고안된 이 프로그램은 대만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을 심사해 투자금의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해외 인력 확충·현지 기관과의 AI 연구개발 협업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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