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는 노트북 PC 시장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변화를 바라보게 된다. 첫 번째는 PC의 ‘심장’이라 일컫는 ‘프로세서’와 플랫폼의 변화다. 프로세서의 변화는 사용자 경험을 근본부터 바꾸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는 디자인과 기능적인 부분들이 바뀌는 ‘상품성’ 측면의 변화다. 때로는 이 부분의 변화가 프로세서의 변화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노트북 PC시장을 바라보면 프로세서와 플랫폼의 변화 이상으로, 노트북의 디자인이나 기능적 변화에서 놀라운 면을 찾을 때가 많다. 특히 보급형에서 주류 급에 이르는 제품들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고급 모델에서나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기대 이상의 만듦새와 고급감, 구성에 놀랄 때도 제법 있다.
이러한 PC 생태계 전반의 ‘상향 평준화’로의 움직임 뒤에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텔의 ‘이보(Evo)’ 인증과 이를 지원하는 ‘랩(Lab)’ 시설이다. 인텔의 ‘오픈 랩’은 제조사들이 매력적인 PC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미국과 중국, 대만 등에 설치돼 주요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 대만에서 직접 찾은 오픈 랩은 예상 이상으로, 그냥 지나칠 만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제품을 넘어 시장 전반의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 만들어
사실 인텔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과 대만 등에 PC 제조사들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 시설을 운영해왔다. 이를 통해 다양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때는 2011년 2세대 코어 프로세서 ‘샌디 브릿지(Sandy Bridge)’와 함께 등장했던 ‘울트라북(Ultrabook)’ 이었다. 당시 에이수스가 선보였던 초대 ‘젠북(Zenbook)’은 인텔과 에이수스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로, 시장에 제법 큰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울트라북 이후 이어진 얇고 가벼운 노트북 만들기 경쟁은 인텔이 2019년 ‘아테나 프로젝트(Project Athena)’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현재 ‘이보(Evo)’의 시작인 ‘아테나 프로젝트’는 무게와 두께, 실제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과 ‘9시간 이상’의 배터리 사용 시간, 대기 모드에서 1초 이내의 복귀 시간, 최신 와이파이 규격과 썬더볼트 포트 등 다양한 요구 사항을 충족시켜야 받을 수 있다.
인텔의 ‘이보’ 인증은 지금까지 노트북을 고르는 데 있어 다양한 기술적 사양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소비자들에 좀 더 단순한 선택 방법을 제시하는 의미도 있다. 일단 ‘이보’ 인증이 있다는 것은 제법 얇고 가볍고, 성능과 배터리 사용 시간도 어느 정도 검증됐으며, 충전도 USB-C 포트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이보’ 인증 제품의 가격대는 조금 높지만, 100만원 전후의 제품에도 인증 제품이 꽤 있다.
AMD도 비슷한 개념으로 ‘AMD 어드밴티지(AMD Advantag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쪽은 ‘고성능 게이밍’ 쪽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이러한 자격 조건에 대한 인증은 꼭 하드웨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윈도 플랫폼과의 인증이나 최근의 ‘코파일럿+ PC’ 등도 비슷한 ‘자격’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기능 구현부터 감성 측면까지 챙기는 ‘오픈 랩’
인텔의 랩 시설은 노트북 제품의 디자인부터 각 기능의 구현 검증에 이르기까지 제법 많은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 측면에서의 지원은 쿨링 시스템 설계와 성능 최적화를 위한 미세조정은 물론이고, 제품 사용 중의 키보드나 팬 소음, 특정 상황에서 나오는 고주파음에 대한 부분까지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게 돕는다. 제품의 온도별 동작에 대한 검증에서는 다양한 온도에서 제품의 정상 동작을 검증하는 시설도 준비돼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작동에 대한 검증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상상 이상으로 노동 집약적인 단계인데, 인텔은 랩 시설에서 이 부분에 ‘AI 기술’을 사용해 인력 부담을 줄였다. 테스트되는 PC마다 스크린을 확인하는 카메라를 놓고, 이 카메라 뒤에는 AI 기반의 이미지 분석 툴을 배치해, 테스트 도중 ‘블루 스크린’ 등이 나타나면 이를 인식, 엔지니어에 알린다.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생활 속 현실적인 AI 활용 사례로는 주목할 만 하다.
인텔이 오픈 랩을 통해 다루는 영역 중 의외로 놀라운 부분은 ‘카메라’와 ‘사운드’다. 이 중 카메라는 적외선과 화상 카메라 모두를 다양한 상황에서 테스트해, 실제 사용자들의 경험 측면을 좀 더 높인다. 그리고 사운드에서는 제품의 스피커, 마이크 셋업이 사용자 경험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도 지원한다. 이런 시설의 지원을 받으면 외관적으로는 큰 디자인 변경이 없어 보이더라도 스피커로 들리는 소리가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인텔은 이러한 실험 시설 규격을 파트너들이 직접 구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와이파이(Wi-Fi)’와 ‘블루투스(Bluetooth)’ 에 대한 검증 과정도 마련됐다. ‘와이파이’에서는 최신 와이파이 7 지원과 함께, 와이파이 전파 세기 등을 분석해 PC 앞에 사람이 있는지를 판단해 PC를 깨우는 기술도 있다. 인텔은 이 기술이 인텔의 와이파이 모듈에 제공되는 독자적 기술이며 라우터 등에서의 추가 지원은 필요 없고, 카메라 기반 솔루션보다는 전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블루투스 기술에서는 서드파티 액세서리 지원과 ‘오라캐스트(Auracast)’ 오디오 공유 기능 등도 다룬다.
업계 전반의 경쟁력 높이는 기여의 효과
인텔의 ‘오픈 랩’ 과 같은 파트너들과의 연구개발 관련 협력은 파트너들이 시장에 더 매력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해, 파트너와 인텔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좋은 사례다. 파트너들은 제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의 부담을 덜 수 있어 좋고, 인텔은 신제품이 더 많이 판매되면서 탑재된 프로세서의 시장 영향력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성이 높아진 신제품의 등장은 구형 제품의 교체수요를 만들기도 수월하다.
무엇보다, 제조사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오늘날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 시간과 자원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이미 P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부상하던 시절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할 뻔한 적도 있다. 여전히 구형 노트북 사용자들의 교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성숙기에 접어든 지 오래인 PC 시장에서 진영을 넘어서는 중요한 과제다.
인텔의 ‘이보’ 인증 규격과 레퍼런스 플랫폼, 추천 설계와 연구개발 협력 등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노트북 PC 업계 전반의 ‘상향 평준화’로도 이어진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제법 얇고 가벼우면서도 배터리도 제법 오래 가는 준수한 노트북을 예전보다 더 낮은 가격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최신 세대 프로세서와 플랫폼을 사용한 제품이라면 어느 브랜드라도 어느 정도의 기대치는 모두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 측면에서 보면 변화를 이끌기 위한 기여에 대한 투자의 끝에는 분명 시장에서 경쟁 우위 확보라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열린 생태계 내에서의 주도권을 위한 노력의 본질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생각도 든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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