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찾은 서울의 한 수소충전소 앞에는 수소 1kg당 1만1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은 정부는 2022년에 kg당 6000원을 약속했지만 이 목표의 2배에 가까운 가격이다.
충전소에서 만난 배명철 씨(41)는 “6년째 수소전기차를 모는데 수소 가격을 6000원보다도 더 낮춰 주겠다던 정부 약속이 전혀 안 지켜졌다”며 “차량 자체는 만족하지만 수소 가격과 인프라 때문에 분노하는 이용자가 많다”고 했다. 수소충전소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여전한 가운데 배 씨는 하루 전인 23일 이 충전소를 찾았다가 앞에 다섯 대가 대기 중인 것을 보고 돌아갔다가 다시 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공수표 된 ‘수소경제 로드맵’
지난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면서 수소차 보급에 공을 들였지만 실제 실적은 정부 계획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당국은 내년도 예산에서 수소차 보급 예산을 올해보다 삭감하고 수소승용차가 아니라 수소상용차 보급으로 방향을 트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11일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의 국내 수소차 보급 대수는 3만4405대로 집계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소차 홍보대사’를 자처했던 지난 정부는 2022년까지 국내에서 6만7000대의 수소차를 보급하겠다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2019년 초에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수소차 보급은 2021년 8532대에 이어 2022년 1만256대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4672대로 급감했다. 국내의 유일한 수소승용차 모델인 ‘넥쏘’는 올해 들어 4월까지 853대 판매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2019년 1304억 원에서 지난해 6334억 원까지 늘어난 수소차 보급 예산도 매년 쓰지 못하고 남는 ‘불용액’이 커지는 모습이다. 2022년에는 4545억 원의 예산 가운데 63.5%(2888억 원), 지난해에는 6334억 원 가운데 50.9%(3223억 원)만 집행됐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수소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과도한 속도전에 나선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소비자들이 충전 문제를 비롯한 수소차의 한계를 알게 되면서 보급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며 “수소차는 수소 인프라 전반이 구축된 다음에 보급하는 것이 맞는데 순서가 거꾸로 된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 수소차 보급 예산 축소 검토 중
정부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특정 분야에 집중해서 정책을 추진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수소 정책이 기술 수준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수립됐던 것 아니냐’는 구 의원의 질의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정부 정책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소 의욕적인 목표 설정과 특정 분야에 집중된 정책을 추진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수소승용차와 연료전지 발전 분야에 초점을 맞추면서 목표 대비 보급 실적이 미흡했다는 설명이다.
올해도 환경부에 5714억 원의 수소차 보급 예산이 배정됐지만 올 4월까지의 소진율이 21.8%에 그쳐 예산 당국은 수소차 보급 예산 축소를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수소차 보급 예산이 올해도 남는다면 내년도 수소차 보급 예산은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며 “보급 방향을 수소승용차보다는 수소트럭 등 상용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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