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차 업계가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글로벌 상용차 브랜드들이 친환경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모델을 속속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함께 전동화 전환에 필요한 인프라는 물론 나아가 수소전기트럭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동화 전환이 자동차 업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단 상용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까다로워지고 있는 환경 규제의 대응책인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발표한 5톤(t) 이상의 중대형 트럭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규칙 시행이다. 미 환경보호국은 2027년부터 강화된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9월부터 유로6 배기가스 기준의 최종 단계인 ‘유로6E’ 규제 기준을 중대형 트럭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올해 9월부터 모든 신차 출고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유로6E는 사실상 유로7 직전 마지막 단계다. 이 기준은 차량이 예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기가스 측정 규정을 강화해 엔진 냉간 시 미세매연입자지수(PN)도 포함되는 등 악조건 상황에서도 유로6 기준치를 만족해야 한다.
규제 강화에 따라 상용차 업체들은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사실상 내연기관 상용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상용차 브랜드 비야디(BYD)는 영국 런던에 신형 2층 전기버스 공급 계획을 밝히며 2층 버스 ‘DB11’을 런던 버스 박물관에서 공개했다. DB11은 532킬로와트시(kWh)급 블레이드 배터리를 장착하고 1회 충전으로 63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다.
영국 DAF 역시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DAF 19톤 전기트럭 ‘XB 일렉트릭’을 공개한 바 있다. XB 일렉트릭은 210kWh LEP 배터리팩과 190킬로와트(kW) 전기모터로 구동된다. DAF에 따르면 효율성을 위해 기존 디젤엔진과 연동이 가능하며 새로운 XB 모델이나 LF 모델을 대체하게 된다.
전동화 전환을 위해 상용차 업체 간 협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의 히노트럭은 노르웨이의 친환경 상용차 개발 기업인 헥사곤푸르스와 손을 잡고 ‘턴(Tern)’ 브랜드를 발표하며 턴 브랜드의 첫 번째 모델인 대형 트럭 ‘RC8’을 공개했다. 턴 관계자는 “RC8은 우리의 첫 번째 대형 전기트럭으로 히노트럭의 인프라를 활용하고 자격을 갖춘 딜러를 통해 독점적으로 제공할 것이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이탈리아 이베코그룹의 상용차 전담 이베코는 중국 상용차 전문기업 포톤과 손을 잡았다. 유럽, 남미를 대상으로 전기 자동차 및 부품 분야 연구 개발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정한 것. 이베코는 “포톤의 상용차 전기,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와 같은 신에너지 기술을 통해 녹색 변혁을 촉진한다는 비전이 이베코그룹의 뜻과 같이하고 있다”고 협력의 이유를 밝혔다.
상용차 전동화 전환은 ‘수소’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캘리포니아 항만 친환경 트럭 도입 프로젝트(NorCAL ZERO)’의 공식 출범을 시작으로 북미 시장에서 수소전기트럭 사업 본격화에 나섰다. 현대차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수소 모빌리티 가치사슬을 활용해 북미 친환경 상용차 사업 확장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볼보트럭은 그린 수소로 주행하는 트럭을 개발해 새로운 친환경 라인업을 구축한다. 볼보트럭의 수소 연료 트럭은 일반적인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과 달리 그린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볼보트럭은 자체적인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9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혼다 미국법인은 ‘ACT 엑스포 2024’에서 클래스 8 수소연료전지 트럭 콘셉트를 선보이며 미래 연료 생산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혼다의 클래스 8 트럭 콘셉트는 3개의 새로운 혼다 연료전지 시스템이 탑재되며 GM과의 합작 투자 생산 시설인 ‘Fuel Cell System Manufacturing’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동화 전환은 충전 인프라 구축이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급률이 높아도 충전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외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론 머스크는 충전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 머스크 사의 계열사인 물류기업 퍼포먼스팀과 일본 프로로지스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세운 EV 충전소 ‘덴커 충전소’가 대표적인 예다. 이 충전소는 전기트럭 96대가 동시 충전이 가능한 규모이며, 볼보 전기트럭 VNR을 기준으로 90분 만에 최대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캘리포니아 정부에 따르면 디젤 트럭의 판매를 중단하고 2035년까지 전기화물 트럭을, 2045년까지는 전기 대형트럭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상용차 충전 인프라 구축은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볼보트럭코리아가 동탄과 인천, 김해 등 직영 서비스센터 3곳에 국내 최초로 대형 전기 트럭 전용 충전시설을 구축한 것. 이는 대형 전기 트럭의 국내 도입 및 상용화를 위해 수립했던 충전 네트워크 구축 로드맵의 첫 번째 단계다.
볼보트럭코리아의 충전시설에는 350kW 초급속 충전기가 구축되어 있으며, FH 일렉트릭 기준 1시간 30분 내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볼보트럭은 첫 번째 충전시설에 이어 전국 31개 볼보트럭 자체 서비스 네트워크에 충전 인프라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한편, 현대차는 디젤과 압축천연가스(CNG) 등 내연기관 고상 시내버스의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와 수소연료 버스의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내연기관 모델의 단산에 따라 빈자리는 ‘일렉시티 타운’과 ‘일렉시티’, ‘일렉시티 수소연료전지’가 메울 예정이다.
국내 지자체 역시 친환경 버스 전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현재 운행에 투입된 7400대가량의 버스 가운데 4000대를 전기 또는 수소버스로 대체할 계획이며, 인천시는 오는 2030년까지 시내버스를 모두 수소버스로 변경한다.
상용차의 전동화 전환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각에서는 충전 인프라가 먼저 확충되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승용차의 전동화 전환 대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 상용차의 전동화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주행 특성상 많은 배출가스를 배출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버렸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상용차의 퇴출은 전동화 전환과 함께 새로운 물류 운송 시스템의 도입을 의미한다. 상용차 업계는 친환경 상용차를 이용한 물류 혁신을 도모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전망이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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