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량 감축에 이어 인권, 환경 기준까지 강화하면서 수출 중소기업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EU 공급망에 속한 중소기업은 빠르면 2027년부터 기후변화 대응 계획과 인권·환경 영향 최소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이나 직접 수출 기업뿐만 아니라 협력 중소기업도 규제 대상이 되는 만큼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EU 이사회는 지난달 기업에 환경·인권 보호 의무를 부여하는 공급망실사지침(CSDDD)을 승인했다. 강제노동이나 삼림 벌채 등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CSDDD에 따라 EU 역내외 기업은 공급망 내 인권·환경 영향 요인을 자체 평가하고, 위험도에 따른 예방·완화 조치를 매해 공시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불만에 따른 고충 처리 시스템 구축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방법·투자계획 등을 제시할 의무도 있다.
이번 이사회 승인에 따라 EU 회원국은 2년 내에 관련 국내법을 제정해야 한다. 업계는 2027년을 실질 발효 시점으로 보고 있다. EU 역외기업의 CSDDD 적용 기준은 2027년 세계 순매출 15억유로(약 2조2400억원) 초과에서 2029년 4억5000만유로(약 6700억원) 초과로 확대된다. EU는 회원국에 실사 의무를 위반할 경우에는 세계 매출액의 최소 5% 이상을 과징금으로 부과토록 했다. EU 역내만 해도 5400여개 기업이 CSDDD 적용대상이 되는 강력한 규제다.
문제는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도 EU CSDDD 규제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EU CSDDD는 기업과 운영·상품·서비스 관련 계약을 체결한 ‘직접 비즈니스 파트너’ 뿐만 아니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간접 비즈니스 파트너도 공급망 실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EU 수출 중소기업 입장에선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품목에 우선 적용되는 데 이어 환경·인권 공시 부담이 생긴 셈이다. CBAM은 6대 품목 이행 대상 중소기업이 1400개 안팎으로 추산됐는데, CSDDD는 매출을 기준으로 하는 만큼 실사 대상 중소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도 본격 시행 3년여를 앞두고 선제 대응에 착수했다. 디지털혁신과를 중소기업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규제 대응 부서로 지정했다. 이달부터 전문가 간담회 등으로 규제 동향을 파악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한다. 중소기업 환경·인권 관련 규제 인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실태파악과 인식 확산에도 중점을 둔다.
중기부 관계자는 “규제에 직접 해당되는 대기업과 1·2차 협력사와 달리 3·4차 협력사는 CSDDD 대응 여부 파악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 ESG 역량 강화 측면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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