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데스크톱 PC를 새로 구입할 때는 ‘PC 케이스’도 새 것을 구입하는 것이 필수로 여겨지곤 한다. 물론 어떤 이는 PC 케이스만 새로 교체하거나, PC 케이스는 놔두고 일부 부품만 업그레이드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부품으로 구성한 PC를 구입할 때는 새로운 ‘최신’ PC 케이스가 반드시 필요할까? 사실 이는 때와 장소,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원론적으로는 ‘아니오’다. 특히 ‘밀레니엄’ 전후의 ATX 규격을 준수하는 PC 케이스라면 대부분 현재의 부품들과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를 수 있고, 실제로는 오래된 PC 케이스를 최신 시스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PC 케이스의 20년 변화, 트렌드 따른 ‘업그레이드’
컴퓨터의 외관과 내부 부품들의 물리적 설치, 고정을 위한 PC 케이스 규격은 PC의 표준화 이후 근본적으로는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의 실질적 표준 규격은 ATX로, 1995년 첫 발표 이후 케이스의 입장에서는 그리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몇 가지 변화를 거치며 3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ATX 규격은 메인보드와 케이스, 파워 서플라이 모두를 아우르는 규격이다. 이전의 AT 규격과 비교하면, 메인보드 측면에서는 케이스와 연결되는 나사 구멍 위치, 확장 슬롯과 중앙처리장치(CPU)의 위치가 바뀌었고, 파워 서플라이와 연결되는 전원 커넥터도 현재와 비슷한 20핀 커넥터를 사용하게 됐다. 요즘은 윈도에서 ‘시스템 종료’를 누르면 종료 과정 이후 시스템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는 게 기본인데, ATX 규격의 도입과 함께 이런 동작이 기본이 됐다.
AT 규격에서 ATX 규격으로의 전환에는 메인보드 고정 등의 문제로 PC 케이스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ATX 규격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PC 케이스에서의 표준 ATX 규격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덕분에 메인보드와 주변 기기들이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길게는 20여년 전의 PC 케이스 안에 최신 부품을 넣는 것도 큰 문제는 없다.
물론 ATX 규격 도입 이후 30년 가까운 기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PC 케이스와 지금의 케이스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예를 들면, 아직도 상당수의 PC 케이스에 남아 있는 측면 에어 홀은 예전 인텔 ‘펜티엄 4’가 나올 때 제시된 쿨링 가이드라인의 흔적이다. 하지만 요즘의 유행인 ‘강화유리’ 측면 패널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에어 홀이 없다. 아예 공기 흐름을 극대화한 ‘메시’ 디자인도 최근 유행이다.
타워형 PC 케이스에서 파워 서플라이의 위치 또한 예전에는 보통 시스템 상단이었지만, 지금은 하단이 유행이다. 예전에는 파워 서플라이의 팬을 시스템 쿨링을 위한 보조 도구로도 사용했지만, 지금은 공기 흐름을 독립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최신 PC 케이스에는 시장 트렌드에 따라 5.25인치 드라이브 베이가 없고 3.5인치 베이도 최소화됐다. 중앙처리장치(CPU)를 위한 일체형 수랭 쿨러를 전면이나 상단에 장착하기 용이하게 만든 점도 눈에 띈다.
밀레니엄 시대 감성에 최신 기술 담는 여정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0년 출시된 챈브로 넷서버 케이스에 ‘13세대 코어 프로세서’ 기반 시스템이나 ‘코어 X 시리즈’ 프로세서 기반 워크스테이션 시스템을 조립해 사용하는데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사실 챈브로 넷서버 케이스는 ‘펜티엄 3’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의 서버용 케이스라 2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의 PC 트렌드와는 제법 큰 차이가 있지만, E-ATX 이상도 지원 가능한 넉넉한 공간 덕분에 의외로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특유의 오래된 설계 덕분에 유지보수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다. 먼저, 최신 PC 케이스에는 CPU 쿨러 뒷쪽의 패널이 뚫려 있지만 오래된 케이스에서는 이런 배려가 없다. 이는 쿨러 장착에 백플레이트 장착이 필요한 경우에, 쿨러를 장착하거나 탈착할 때 시스템 전체를 분해하고 메인보드를 들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안긴다. 반면 CPU 쿨러 뒷쪽 패널이 뚫려 있는 설계는 큰 무리 없이 쿨러를 장착, 탈착할 수 있다.
크기가 많이 커진 최신 그래픽카드를 사용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공간이 넉넉한 경우에는 큰 상관이 없지만, 약 10년 전쯤에 인기를 끌던 미들타워나 빅타워 PC 케이스들은 전면에 스토리지를 위한 베이를 고정 구성해, 최대 장착 가능한 그래픽카드 길이가 300mm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는 10년 전에도 가끔 문제가 됐지만, 지금은 좀 더 문제를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일체형 수랭 쿨러의 경우 오래된 PC 케이스에서는 장착 자체가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이에 오래된 케이스를 사용할 때는 타워형 공랭 쿨러를 사용하는 편이 좋겠다. 타워형 공랭 쿨러를 사용할 때도 높이 부분을 잘 고려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120mm 팬을 쓰는 160mm 이하 높이면 무난하지만, 92mm 팬을 쓰는 더 작은 모델 쪽이 더 여유있게 장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범용 케이스라면, 케이스의 동작 LED나 스위치 또한 거의 대부분 그대로 사용 가능하다. 예나 지금이나 전원 버튼은 여전히 2핀 스위치고, 주요 LED 또한 여전히 2핀 LED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버튼과 LED의 연결이 필수인 것도 아니다. 전원 버튼과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LED 정도만 연결해도 큰 불편이 없고, 극단적으로는 전원 버튼만 있어도 어떻게든 문제없이 쓸 수 있다. 단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한 원인 분석이 조금 더 번거로워질 뿐이다.
개성의 극대화, PC 케이스 개조와 자작의 길
낡은 ‘범용’ ATX 케이스를 지금 와서 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몇 가지 불편한 점도 있다. 가장 먼저 느껴질 점은 전면 USB 패널 등의 편의 기능일 것이다. 오래된 PC 케이스의 경우 아예 전면 USB 패널 등의 기능이 없거나, 있어도 기껏 해야 USB 2.0 정도의 낡은 규격이거나, 그나마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가장 간편히 쓸 수 있는 건 적당한 ‘USB 허브’를 본체 뒷면의 메인보드 백패널 쪽 포트에 연결해 손이 닿는 곳에 두는 것이다.
낡은 PC 케이스에서는 종종 단순한 기계식 전원 버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럴 때는 본격적인 ‘수리’나 ‘개조’가 필요할 수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적당한 새로운 2핀 스위치를 구해서 기존의 PC 케이스 스위치 밑에 두고, 잘 눌리게 위치를 조절해 주는 정도다. 이런 방법이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아예 새로운 스위치를 만들어도 된다. 새로운 스위치를 메인보드와 연결하고, 적당히 손이 가기 편한 곳에 잘 붙여 두면 된다. 의외로 이런 방법을 꽤 잘 만들어 놓은 ‘상품’도 있는데, 제품에 따라서는 USB 허브까지도 함께 있다.
좀 더 본격적으로 나가면, 기존의 PC 케이스를 ‘개조’하거나 아예 새로운 케이스를 ‘자작’ 할 수도 있다. 이 중 기존 PC 케이스를 개조하는 경우는 주로 대형 제조사의 PC나 워크스테이션 케이스에 새로운 부품을 붙이기 위한 경우가 많다. 최신 부품으로 PC를 교체하려는 남편들이 아내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경우 메인보드가 표준 규격을 준수한다면 큰 무리 없이 가능하겠지만, 메인보드가 독자 규격이라면 제법 큰 개조가 된다. 실제 워크스테이션 급 모델의 상당수는 최적화를 위한 독자적 변형 설계를 사용하고 있다.
전면 패널이나 파워 서플라이의 경우도 대기업의 워크스테이션 급이면 독자 규격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경우에는 선구자의 연구 결과를 찾아보거나 직접 테스터로 핀 맵을 찍어서 확인하고 연결하는 방법, 혹은 아예 새로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파워 서플라이의 경우는 물리적으로 ‘나사 구멍’이 문제면 새로 뚫으면 되겠고, 케이블 규격 문제는 선구자의 고민과 연구 결과를 찾아보는 쪽을 추천한다.
PC 케이스의 자작은 의외로 기술적인 제약이 까다롭지는 않다. 사용할 메인보드와 나사 홀 등의 물리적 호환성만 고려하면, 재질 같은 부분은 의외로 허용성이 넓다. 이 영역은 보통 ‘아크릴’ 을 사용한 자작이 떠오르지만, 극단적으로는 메인보드를 스폰지 한 장 위에 올려서 쓰거나 종이 박스에 대충 넣어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PC 수리나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의 작업 환경에서는 PC 케이스에 조립도 번거로워서 책상 위에 정전기 방지 스폰지만 깔고, 전원은 메인보드의 핀 단자에 드라이버를 직접 ‘쇼트’ 시켜서 켜는 경우도 흔하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면, 당장 PC 케이스를 고르는 ‘관점’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PC가 여러 번 바뀌면서도 PC 케이스는 10년 이상 쓸 수 있다면, 제법 고가의 고급형 케이스도 충분히 구입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 혹은 기존에 잘 쓰고 있던 PC 케이스가 있다면, 새로운 PC를 고민할 때 케이스 교체는 제외해도 되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PC의 숙명은 ‘개인화’고, 유행이나 연식에 상관없이 자신이 편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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