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경쟁법 석학들이 정부와 야당의 플랫폼법 재추진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지난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보류했던 ‘플랫폼 경쟁촉진법’ 입법 재추진을 공식화하고, 22대 총선에 압승한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플랫폼 규제 입법을 강화해 재추진할 것이란 전망에 대한 의견이다.
홍대식 서강대학교 교수와 다니엘 소콜 서던캘리포니아대의 교수는 최근 한 언론사에 제공한 공동 기고문에서 한국 정부가 유럽연합의 디지털 시장법(DMA)을 모델로 한 플랫폼 규제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한국의 플랫폼 규제는 방향이 잘못된 것으로 혁신 역량을 위협하고 있어 이를 경계해야 한다 목소리를 같이 했다. 두 교수는 경쟁법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석학이다.
홍 교수와 소콜 교수는 “DMA와 같은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면 한국의 혁신 우위가 훼손될 수 있다”며 플랫폼법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내비쳤다. 이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DMA와 같은 법안이 한국이나 다른 국가에 경쟁 촉진을 위한 모델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유럽의 이전 법안인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은 경쟁을 저해해 벤처 캐피탈의 AI 투자가 감소하고 앱은 3분의1이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라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플랫폼 규제도 규제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의 수가 줄어들고 벤처 캐피탈의 투자도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망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플랫폼 운영에 대한 제약이 커지면 소상공인들이 주축인 중소기업 생태계에 또한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홍 교수와 소콜 교수는 “세계은행을 포함한 다수의 실증적 증거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이 중소기업과 혁신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온라인 플랫폼을 겨냥한 추가적 경쟁 규제는 그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유럽과는 다른 경제적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유럽과 달리 한국에는 미국,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자국 테크기업이 상당수 있고 한국은 기존 경쟁법에 따라 테크기업 등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며 이런 점을 감안해 플랫폼 규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플랫폼법 재추진 의사를 밝히며 “유럽연합(EU)의 DMA는 사전 지정 제도이고 영국과 독일 역시 사전 지정제”라며 “일본 법안도 사전 지정을 전제로 하는 등 대부분 입법례와 관련 법안이 사전 지정 제도를 포함해 구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EU의 DMA는 사실상 자국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애플,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시장잠식을 막는 자국 보호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는 한국 공정위의 플랫폼법과는 취지를 달리한다고 보고 있다.
홍 교수와 소콜 교수는 “한국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라며 “혁신과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기존에 갖고 있던 수단을 현명하게 사용해 경쟁을 촉진시킬 수도 있고, 검증되지 않은 유럽 규제 모델을 맹목적으로 따름으로써 침체와 경제 쇠퇴의 길로 갈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