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의료 전문가들이 고령화를 대비하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대응을 위해선 의료 정보 활용이 더 이상 지체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규제 개선 움직임에 맞춰 시민 사회를 대상으로 의료 정보 활용 인식 제고와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콘퍼런스 ‘레디컬 헬스 페스티벌’ 토론회에선 각국의 의료 정보 2차 활용 현황과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유럽 헬스케어 전문 기관, 학회, 기업이 모여 정책 수립과 산업 발전을 논의하는 자리로,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부·학계·기업 관계자들은 핀란드 등 일부를 제외하고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의료 정보 활용에 제약이 많다고 진단했다.
미셸 실베스트리 스웨덴 전자보건국 유닛장은 “스웨덴에서 2차(연구·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건강 데이터는 매우 단편화되고 분산돼 있다”라며 “연구자가 이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정보 주체에게도 신청해야 하는 등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대표해 참석한 이상헌 휴니버스글로벌 대표(고대안암병원 교수)도 “한국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3개법을 개정해 의료 정보 활용 길을 열었다”면서 “현실에선 대중의 불안과 불신으로 시민사회 반발이 커 제약이 크다”고 지적했다.
각국 정부는 물론 기업까지 세계는 의료 정보 확보와 수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고령화에 대비한 보건 정책 수립과 질병 정복 때문이다.
의료 정보 활용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핀란드는 ‘마인칸타’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의무기록, 처방전 검색, 전자 처방전 발행 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2019년 5월에는 ‘의료 건강 데이터 2차 이용에 관한 법률’을 시행, 핀란드 내 민간 기업과 연구소가 연구 목적으로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특히 핀란드 환자들은 개인 정보 활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의료 정보 개방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단단한 상황이다.
마리안 라스니어스 핀란드 메다프콘 상임 고문은 “의료 정보 활용은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제한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등 사회에 이익이 된다”며 “데이터 보호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고려할 때 보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로 규제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활용이 더딘 것은 사회적 합의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 이력 제공 △활용 효과 홍보 △데이터 보호를 위한 신뢰 구축 등을 제시했다.
토모히로 구로다 교토대학교 교수는 “일본 정부는 연구 목적의 의료 정보를 개방하는 데 있어 매년 보안 통제 여부를 확인하는 점검하는 한편 민간에서도 추가로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며 “이는 데이터 보안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함인데, 결국 시민사회와 소통이 데이터 활용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라스니어스 상임 고문 역시 “의료 정보가 다양하게 활용될수록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며 “다만 이 과정에서 개인에게 행정적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헬싱키(핀란드)=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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