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과 기존 직역단체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률 서비스 스타트업에 추가 징계를 예고하고 투자사에 압박 공세까지 펼치는 양상이다. 정부 중재가 시급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는 신·구산업 갈등 관리 전담 부서를 신설한 지 100일이 다 돼 가도록 뚜렷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 2월 신산업 규제 개선을 전담하는 창업벤처규제혁신단을 신설했다. 혁신단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직역 간 갈등이 있는 신산업 분야의 갈등관리 매뉴얼 구축이다. 전문가와 함께 신산업 분야 스타트업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표적 규제를 선정하고, 주요 쟁점별 입장을 분석해 조정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업계 간담회, 국회·언론사 공동 포럼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한의사협회와 갈등을 겪는 삼쩜삼(자비스앤빌런즈), 강남언니(힐링페이퍼)를 갈등관리 프로세스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
혁신단 출범 세 달이 지났지만 플랫폼 기업과 직역 단체 간 갈등 완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준비 중이다. 지난 4월 말에야 신산업 분야 핵심 규제 선정 1차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직역 단체 갈등 공론화를 위한 포럼은 열리지 않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신·구산업 간 갈등관리를 주요 업무로 삼고 대응 방안 등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갈등관리 매뉴얼의 구체적 내용과 플랫폼 기업·직역단체와 접촉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창업벤처규제혁신단이 세 달째 뚜렷한 갈등관리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리걸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직역단체 공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변협은 최근 변협은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법률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출시한 스타트업 엘박스에 형사고발 검토를 마쳤다. 변호사가 질문을 입력하면 판례·법령·유권해석 등을 종합해 답을 제시하는 서비스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안 된다’는 변호사법 34조5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엘박스측은 “서비스 출시 전 로펌에서 법률 검토를 마쳤다”면서 “법률 전문가를 대상으로 문헌·데이터를 제공할 뿐 변호사 직무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변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에 ‘리걸테크 스타트업 투자 시 변호사법 위반 주의사항 관련 설명회’ 참석 공문을 발송했다. 이들 VC는 앞서 로앤굿, BHSN, 엘박스 등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변협은 법률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를 검토할 때 주의할 점을 공유하기 위해 설명회를 연다는 입장이지만, VC업계는 리걸테크 기업 투자를 자제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리걸테크 기업 관계자는 “변협에서 차기 회장 선거를 두고 또다시 스타트업을 표적으로 삼아 이슈를 제기하는 분위기”라면서 “토종 스타트업이 직역단체와 맞서는 사이 글로벌 기업이 국내 시장을 장악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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