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통제약사들이 신약 등 신규 약물 창출을 넘어 위탁개발(CDMO) 공정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막대한 자본이 투여된 이후에도 성공확률이 극도로 낮은 약품개발보다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CDMO 사업을 통해 외연확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통 제약사들이 자사의 CDMO 분야의 외연 확장을 노리며 관련 산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화학(케미컬) 의약품 산업에 한계를 느낀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의약품 상업화 솔루션을 상품화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달 열린 국내 최대 바이오 콘퍼런스인 ‘바이오코리아 2024’에서도 한미약품, 유한양행, 동아쏘시오그룹 등이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CDMO 사업 홍보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우선 한미약품은 보편적인 CDMO 기업의 생산 방식인 동물세포 배양이 아닌 미생물 배양 공정을 전문화한 ‘평택 바이오플랜트’를 홍보하며 글로벌 파트너 유치에 나섰다.
평택 바이오플랜트는 최대 1만2500리터(ℓ) 규모의 배양기와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인력 및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는 글로벌 규모의 미생물 배양 전문 제조시설이다. 완제의약품 기준으로 연간 2000만개 이상의 프리필드시린지 주사기(prefilled syringe)를 제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미국 FDA 시판허가를 받은 33호 국산 신약 ‘롤베돈(한국명 롤론티스)’도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생산돼 미국에 공급되고 있다. 미국 MSD와 같은 글로벌 제약기업과도 협업하며 임상용 제품을 해외에 공급하고 있는 전진기지 역시 평택 바이오플랜트이다.
한미약품은 FDA 등 글로벌 규제기관에 성공적으로 의약품 허가를 획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클라이언트에게 후보물질 제품 개선부터 최종 상품화 과정까지 컨설턴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유한양행은 31호 국산 신약이자 EGFR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성공을 앞세워, 회사의 연구개발(R&D) 성과와 더불어 CDMO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자회사인 유한화학과 협력해 고품질 화학합성의약품의 핵심 원료(API)를 중심으로 CMO 사업을 시작, 총 생산능력 70만ℓ 규모의 미국 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cGMP)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한양행은 CDMO 사업을 통해 매해 2000억~3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화성시에 신공장 증축도 진행 중이다.
유한양행은 중앙연구소 의약공정 부문을 통해 공정개발 및 최적화을 진행한 뒤 유한화학이 기술이전을 하는 등 CDMO 분야에 체계가 갖춰져 있는 만큼 글로벌 파트너를 유치해 회사의 신규 매출 증대를 구상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주요고객으로 글로벌 빅파마인 길리어드사이언스와 화이자 등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CDMO 고객 유치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동아쏘시오그룹은 CDMO 계열사 에스티팜을 통해 올리고 핵산 치료제의 원료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를 글로벌 바이오기업 등에 공급하고 있다.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 API 공급사로 시작해 2020년부터 메신저리보핵산(mRNA) CDMO로 사업을 확대했다.
누적 수주 규모는 250억원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mRNA 기술이 백신과 치료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관련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에스티팜은 이번 바이오코라아 2024에서도 CDMO와 함께 mRNA 등을 적극 홍보하며 글로벌 파트너십 계약을 위한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종근당은 자회사 경보제약을 통해 CDMO 사업을 추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에 이어 프로티움사이언스, 파로스젠과 항체약물접합체(ADC) 관련 공동개발 및 생산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해 CDMO 사업 확장에 시동을 건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ADC 생산을 위한 대규모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유제약은 지난달 10곳의 제약사와 항히스타민제 펙소지엔정(성분명 펙소페나딘염산염) CMO 계약을 체결하며, 침체돼 있던 회사에 신성장 동력을 구축하고 있다.
앞선 기업들처럼 클라이언트 제품을 ‘발전(Development)’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지만, 전통 제약사의 케미칼 의약품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제품 생산 및 공급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성장성 침체를 겪고 있는 전통제약사들이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혁신 신약 개발 이외에 신규 사업으로 기존 공장을 활용한 CDMO를 낙점하는 분위기다”라며 “국내 제약바이오 위상이 높아진 만큼 생산 공정을 대표하는 CDMO 사업도 덩달아 명성이 알려지면서 관련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