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이른 오전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 형제(임종윤·종훈)가 이날 어머니인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을 대표직에서 해임하는 내용의 이사회를 열기로 하면서 본사 로비 안은 출근하는 직원과 기자들로 붐볐다.
이사회가 열리기 한참 전인 오전 7시경,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회사로 출근했다. 임 대표는 어머니인 송영숙 회장을 해임하는 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말 없이 회사로 들어갔다. 그는 이날 임시 이사회를 직접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오전 9시 20분 송 회장의 차가 정문 앞에 섰다. 직원의 도움 없이 홀로 차에서 내린 그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 이후 열린 첫 이사회 때와 달리 굳은 표정이었다. 기자들의 물음에는 입을 꾹 다문 채 이사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남인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은 이날 이사회에 비대면으로 참여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의 해임안에 동의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형제가 이사회 소집 여부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오나 형제 측은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일축했다.
오전 10시 열린 이사회는 1시간 뒤에 끝났다. 이사진은 과반 찬성으로 송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형제 측과 화합을 내걸고 이룬 공동 경영체제가 한 달 여만에 깨진 셈이다. 송 회장은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사내이사 임기인 2026년까지로 경영진으로 남는다.
앞서 임종훈 대표는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표대결에서 모녀 측을 상대로 승리한 이후 “가족이 다 같이 합쳐서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모녀와 화합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형제가 어머니를 해임하기로 한 데는 지난 한 달여간 공동 대표직을 맡으면서 인사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던 이유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달 한미사이언스는 임원인사를 낸 지 열흘여 만에 대표이사 직권으로 이를 취소한 바 있다.
이사회를 끝마친 경영진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난 가운데 이날 정오경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이 차에서 내려 본사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는 형제 측이 주도하는 새 조직개편 과정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한미약품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분쟁 과정에서 형제와 대립했던 모녀가 경영에서 모두 손을 떼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날 의사회 결의로 형제 측은 그룹의 경영권을 확고히 잡게 됐다. 임종훈 대표는 지주사 단독 대표로, 임종윤 회장은 내달 열리는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한미약품 대표이사로 선임될 계획이다.
임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회사를 떠나면서 “단독대표로 투자 등 경영에 속도를 내겠다”는 짧은 소감을 밝혔다. 장차남이 모두 회사를 비운 가운데 모녀는 이후로도 한참동안 회사 밖을 나오지 않았다.
형제 측 관계자는 “책임 경영 차원에서 임종훈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가족 간의 불화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내달 임시주총에서 임종윤 회장이 한미약품 대표로 올라가는 등 예정된 수순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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